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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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제, 힘겨운 한 해를 정리하다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7. 11. 23. 23:32
꿈 하나로 충분한 그들, 영화인들에게 박수를 꿈이란 단어 하나면 충분했다. 그 단어 하나로 청룡영화제에 모인 영화인들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개그콘서트’ 뮤지컬 팀이 청룡영화제 2부의 시작과 함께 무대에 올랐을 때만 해도 그저 축하무대 정도로만 생각됐다. 하지만 힘겨운 영화인들의 일상이 겹쳐지면서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 뮤지컬 팀에 의해 번갈아 노래되고 안성기가 올 한해 어려웠던 우리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영화인들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인순이가 피날레를 장식하고 영화인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칠 때 카메라에 잡힌 영화인들의 얼굴은 모두 숙연해졌다.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에서도 ‘어려운 한 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아한 세계’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는 “상을 받기 위해 영화를 하는 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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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데이즈’, 모성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7. 11. 15. 09:13
모성과 스릴러를 결합시킨 ‘세븐데이즈’ 지연(김윤진)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승률 99%의 잘 나가는 변호사, 하지만 딸에게는 빵점 짜리 엄마인 그녀는 딸에게 1등을 선사하기 위해 운동회 달리기에서 전력질주를 한다. 그리고 1등으로 골인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갑작스레 유괴된 딸을 찾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지연을 따라서 달리는 카메라도 숨가쁘다. 인물 동선의 중간이 생략된 채 계속해서 점프하는 컷들과 멀리서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망원렌즈로 당겨진 컷들의 연속은 관객들의 숨까지 턱에 차게 만든다. 지연이 변호사이며 유괴범의 목적이 희대의 강간살인범의 무죄방면이란 점에서 영화는 법정 안에 인물들을 가둬놓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판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연은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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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에로틱하지만 안타까운 살들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7. 11. 8. 22:27
‘색, 계’, 관념의 속살을 뱀처럼 파고드는 영화 “그는 나를 뱀처럼 파고들었어.” 왕치아즈(탕웨이)의 묘사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살들이 마치 서로의 몸 속으로 파고들겠다는 듯이 꿈틀거린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걷어내고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에로틱하면서도 동시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은 적나라한 살점과 몸의 촉점(觸點)들이 서로의 빈틈을 파고드는 두말 할 것 없는 정사장면이지만, 또한 하나가 되기 위한 욕망 속에 안간힘을 쓰면서도 결국에는 경계지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암살하기 위해 막부인으로 위장하여 접근한 왕치아즈. 점차 서로에게 끌리게 되면서 파국으로 가게 된다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어찌 보면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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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청국장을 찾는 소시민 영웅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2007. 11. 3. 00:07
소시민들의 영웅 환타지, ‘히어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히어로’의 영화판은 드라마의 재연에 가깝다. 특별히 영화로 소재를 가져오면서 과장의 흔적도 없고, 스케일이 커진 것도 그다지 없다. 드라마에서 카메라가 사건 현장과 법정, 도쿄 검찰청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영화도 줄곧 포커스를 그 곳에 맞춘다. 조금 다른 것은 우리나라의 관객들을 의식해 부산이 잠깐 등장하고 이병헌이 카메오로 출연한다는 정도랄까. 이것은 ‘히어로’라는 우리의 선입견을 자극하는 거창한(?) 제목의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 그대로다. 도대체 히어로(영웅)는 어디에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그래도 영화인데 좀 거창한 스케일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똑같은 의아함에 사로잡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