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가 조명한 숨겨진 주인공들의 가치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부산세관에서 일하는 김철민 팀장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나와 했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 성대모사는 순식간에 짤이 되어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다른 출연자들이 나왔을 때도 수시로 이를 따라하면서 마치 이 프로그램의 공식 유행어가 됐고, 이는 <난리 났네 난리 났어>라는 스핀오프격의 프로그램으로까지 런칭되어 이제 방영을 앞두게 됐다. 

 

이 유행어가 특히 기분 좋게 느껴졌던 건, 그것이 영화나 드라마의 주연배우의 대사에서 탄생한 게 아니라, 주연 옆에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맛깔스런 연기로 그 장면들을 빛내주는 조연의 대사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건 늘 TV를 틀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분들이나 세상 구석구석에서 유명하진 않아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분들을 카메라 앞에 보여준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도 잘 맞는 일이었다. 

 

마침 'Unsung Hero(드러나지 않는 영웅)'라는 주제로 방영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바로 그 "난리 났네 난리 났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의 아내로 출연했던 배우 김영선을 초대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방영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다. 예능, 아니 방송 출연 자체가 낯설다는 김영선 배우는 자신을 알린 작품으로 <유퀴즈>를 꼽을 정도로, 여러 작품에 출연하긴 했지만 했던 역할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로 데뷔했다는 김영선 배우는 27년 간 연기의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물론 연기만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워 대리운전, 학습지 배달, 호프집 서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고 하는 김영선 배우는, 여러 일을 해봐도 자신에게 맞는 건 역시 연기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에 들어갔지만 숫자에 약하다고 했고, 옷 장사도 해봤지만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했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천상 배우였다. 

 

놀라웠던 건 눈물 연기를 몰입하는 건 기본이고, 상대 배우가 감정이 잘 안 잡힐 때 그걸 유도해내는 역할 또한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조세호를 대상으로 김영선 배우가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보는 것만으로 조세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막힌 광경이 연출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조세호는 김영선 배우가 눈빛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눈물이 쏟아졌다는 것. 

 

김영선 배우가 보여준 것처럼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영화 판으로 보면 주인공 몇 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김영선 배우처럼 그들 주변으로 수십 명의 인물들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주인공을 빛내주는 그들이야말로 숨겨진 주인공들인지도. 

 

<유퀴즈>가 조명한 국내 1호 로케이션 매니저 김태영이나, 불펜포수 안다훈, 액션 대역 배우 김선웅이 그런 인물들이다.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장소들이나 공간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김태영 같은 로케이션 매니저가 있어 작품이 빛나고, 불펜에서 선수들의 볼을 받아주고 그들의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불펜포수 안다훈 같은 인물이 있어 팀의 보이지 않는 전력이 생겨난다. 또 자신을 최대한 지우고 주인공을 드러내게 하는 게 일일 수밖에 없는 액션 대역 배우 김선웅 같은 인물 또한. 

 

스포트라이트 뒤쪽에 있는 일이 어찌 어렵지 않을까. 안다훈 불펜포수가 자신을 '야구하는 피에로'에 비유한 건 그런 고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팀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체크해야 하는 자신의 직업 속에서 그는 늘 웃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힘겨운 일은 피에로처럼 숨겨야 되는 직업이라는 것. 하지만 그래도 그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들어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배우 김영선과 불펜포수 안다훈 같은 인물들이 넘쳐날까. 그들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진짜 세상이 움직이는 동력이 아닐까. 그러니 운 좋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입장이 된 이들이라면 그들 뒤에 이처럼 실제 동력이 되어주는 'Unsung Hero'들이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기를. <유퀴즈>는 말하고 있다.(사진:tvN)

서예가, 대동물수의사.. '유퀴즈'의 우직한 시선을 기대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소의 해를 맞아 이를 특집으로 꾸민다고 했을 때, 다소 뻔한 예상했던 게 사실이다. 소띠 출신 누군가가 나온다거나, 소와 관련된 인물들이 나올 거라는 것. 사실 이 특집에 등장한 이들은 모두 소와 무관하다 할 수는 없었다. 이를 테면 소띠 프로게이머 '무릎' 선수나, 큰 동물들을 치료해 매일 소를 접하는 대수의사 이한경 원장이나, 소몰이 창법의 SG워너비 김진호 같은 출연자들이 있었으니.

 

하지만 <유퀴즈>는 단순하게 카테고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소라는 동물이 가진 특성 중 '우직함'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초대했다. 즉 게임 철권 프로게이머 '무릎'이 초대된 건 소띠 프로게이머이기도 했지만, 그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현역으로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한 채 소처럼 우직하게 버텨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장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그는 현재 65회 우승을 했는데 100회 우승을 채워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붓글씨를 대필해주는 일을 하면서, '소처럼 우직하게' 서예의 길을 걷고 있는 이정화 서예가도 마찬가지였다. <해를 품은 달>, <미스터 션샤인>, <호텔 델루나>, <육룡이 나르샤> 같은 작품들의 붓글씨를 대필해온 이정화 서예가는 이제 겨우 31세. 하지만 7살 때부터 시작해 걸어온 길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의 붓글씨가 놀라운 건 그저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정들이 더해진 글씨를 쓴다는 것이고, 대필을 했던 것처럼 쓰는 연기도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캘리그라피에 가까운 글씨도 척척 써내는 이정화씨는 마치 그림 같은 붓글씨로 <유퀴즈>를 유재석과 조세호가 걷는 모습으로 써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날치 밴드의 유진과 함께 세계투어를 하며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일도 했던 그는 프리랜서로서 수입이 많지 않아 "조금씩 먹고 살고 있다" 했다. 한 달에 20만원을 못 벌 때도 있다는 그는, 그런 어려움보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유지하고픈 '순수한 마음'이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작아지는 게 더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여러모로 사람들이 찾지 않아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일이 '서예'지만, 그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며 그래도 끝을 놓지 않고 있으면 반드시 필요한 서예가로 남을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가장 기대되는 개그맨'으로 소개된 김민수와 김해준은 아마도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이 점점 사라져 설 자리가 없어진 상황 속에서도 유튜브 같은 새로운 길을 내며 끝까지 개그맨의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에서 섭외됐을 게다. 그간 시상식 소감에서도 또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계속 개그 프로그램의 폐지로 개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했던 유재석이었다. 그래서 그는 '소의 해' 특집에 개그맨 후배들을 초대해 그래도 우직하게 계속 그 길을 가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소진료를 28년 째 하고 있다는 대동물수의사 이한경씨가 섭외된 것도 단지 소를 주로 진료한다는 단순한 의미 때문은 아니었다. 소나 말 같은 대동물(큰 동물)을 치료하는 의사라는 그는 소가 '산업동물'이다 보니 소의 가격보다 진료비가 많이 나오는 경우 진료를 끝까지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말은 대동물수의사라는 직업이 반려동물 수의사와 달리 '큰 돈'이 드는 진료가 없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분야를 선택하는 이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할 그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가 이 특집에 섭외된 진짜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SG워너비의 김진호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소몰이 창법을 했기 때문에 섭외된 게 아니라, 그가 현재 걸어가고 있는 길이 다른 가수들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재능기부에 가깝게 고3 졸업식이나 병원 같은 곳을 다니면서 무료로 노래를 해주며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 "빈 주머니로 만나서 같이 무언가를 노래로 나누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스타가 되기 위한 가수의 길이 아니라, 노래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길. 그래서 그의 노래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길거리로 나가지 못하고, 그래서 그 곳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을 만나기 어려워진 <유퀴즈>는 그래서 그 대안으로 특별한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을 섭외해 방송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은 아니어도 다소 유명한 이들, 성공한 이들이 섭외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에 대한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유퀴즈> 소의 해 특집이 보여준 것처럼, 저마다의 위치에서 심지어 그 직업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누군가는 그 일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우직하게 그 길을 가고 있는 그런 이들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유퀴즈> 역시 우직하게 이런 길을 가기를.(사진:tvN)

'유퀴즈', 돈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다면

 

"진짜 지쳤을 때 집에 와서 집어 들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좀 따뜻하고 내일 일어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가로 잘 알려진 정세랑 작가는 자신이 쓰고픈 책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유독 좋아했고, 또 글 쓰는 걸 좋아해 매일 샐러리맨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고 일이 끝나고 나면 타인의 글을 잃거나 작품을 보며 논다는 정세랑 작가. 책 판매부수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그의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것.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겨울방학 탐구생활'이라는 부제를 달고 어떤 분야를 탐구함으로써 그것을 직업이 된 이들을 담은 이야기는, 직업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게 직업이라고 하면 먼저 '밥벌이'에 '생계'를 생각하고 그래서 현실적인 '돈'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 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소명의식 같은 것들은 그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후순위로 밀리거나, 당장의 선택기준이 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정세랑 작가는 '어떤 질문이든 답을 알려주는 사전이 있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뭐냐는 물음에,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고 했다. 가장 시급하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알면 다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정세랑 작가는 "지금까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주의를 기울여야할 사회 문제나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걸 은연 중에 말하고 있었다.

 

<조선잡사>를 쓴 강문종 교수는 조선시대를 연구하다 가장 궁금했던 게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가 였다고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직업을 탐구한 그는 <의궤>라는 책에만 160개에서 200개의 직업이 있다고 했고, 가장 큰 돈을 번 직업이 사쾌(부동산 중개업자), 수모(웨딩플래너) 같은 직업도 있었지만, 매품팔이(매를 대신 맞아주는) 대장자 같은 불법이지만 살기 위해 대신 맞는 일까지 했던 직업도 있었다고 했다. 

 

막힘없이 조선시대 직업에 대해 다양한 정보들을 풀어내주는 강문종 교수에게 조세호가 놀랍다고 말하자, 그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며 '잘난 척 하는 것'이 그 동기라는 소탈한 이야기를 내놨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방송사에서도 개그맨 공채를 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유재석이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건 아니냐고 묻자, 강교수는 즐거움을 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며 직업에 대한 남다른 가치관을 들려줬다. 

 

그는 이 탐구를 통해 "아주 사소하지만, 아주 지저분하지만 본인의 생계를 위해 또는 본인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며 분뇨를 처리하던 '똥장군'을 연암 박지원이 <예덕선생전>에서 '선생'이라 표현했던 대목을 들려줬다. "좀 더러운 것 또는 뭐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수많은 직업들이 끊임없이 유지가 되고 거기에 종사하면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갔을까"하는 스스로 드는 의문에 대해 그는 '자기만의 문법과 자기만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그 힘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22개국의 참전용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전달하고 그 기록을 남기는 일을 사비를 들여 하고 있는 사진작가 라미는 바로 그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직업인이었다. 2017년부터 개인작업으로 시작한 이 일로 그가 찍은 참전용사의 수만 1400명. "사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무언가를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은사가 말해준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그는 빚을 내서도 하게 된 그 일을 통해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영국의 참전용사였던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불편한 몸에도 군인으로서 서서 찍겠다 말하며 아내의 부축을 받고 사진을 찍었는데, 라미는 그 사진을 전달하러 갔을 때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결국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라미가 말한 사진의 가치 그대로 '기록'을 통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직업이 단지 생계를 위한 돈의 차원을 넘어 소명의 가치를 갖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직업 선택에 있어서 현실적인 '밥벌이'는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 자체가 힘겨워진 현실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돈만이 가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유퀴즈>는 에둘러 보여줬다. 최근 출연자 논란으로 질타를 받은 뒤 "제작진의 무지함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며 공식 사과문을 내놓은 <유퀴즈>가 프로그램 내용으로 그 사과의 진정성을 드러낸 셈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야말로 코로나로 인해 '직업의 세계'를 주로 다뤄왔던 <유퀴즈>가 향후 계속 추구해야할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그저 연봉이나 수입 그리고 그 수치로 얘기되는 성공에 경도될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살아도 저마다의 소명의 가치를 드러내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사진:tvN)

'유퀴즈'가 한 해의 마무리에 들려준 해고, 은퇴, 사별의 이야기

 

"기장님들이나 나이가 좀 있으신 사무장님들은 가정을 책임지셔야 하고 자격증이 되게 전문적이잖아요. 항공쪽 아니면 이걸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간담회 같은 데 가보면 택배 알바를 가셔서 다리를 다치셔서 목발을 짚고 오신 분도 계시고... 거의 눈물바다였던 것 같아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한 해의 마무리 방송에 '시작과 끝'이라는 주제로 초대한 한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정리해고된 류승연씨는 의외로 너무나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어려움보다 간담회 같은 데서 봤던 나이가 있으신 선배들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했다. 선배들은 늘 밝고 긍정적인 류승연씨를 보며 힘이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너무나 잘 구해서 '알바몬(알바괴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류승연씨는 무급휴직 7개월 동안 전시회 안내, 텔레마케터 꽃집 판매원, 피부 테라피샵 접수원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꽤 밝은 얼굴로 웃으며 전해줬다. 지난 2월에 입사해 비행을 1년 정도 하다 해고통지를 받았다는 류승연씨. 취업 시험에만 30번 정도 떨어져 5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된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자신에게 "넌 잘하고 있어"라고 스스로 자꾸 이야기한다며 밝게 얘기하던 류승연씨는 그러나 다른 동료들에게 한 마디를 해달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먹먹해했다. 그는 자신을 보며 힘이 난다 말해주는 선배, 동료들의 이야기 때문에 애써 밝게 웃고 있었다. 힘겨워도 애써 웃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잘 될 거라 말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분들이 있어 이 어려운 시국에도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올해의 마지막 초대손님으로 소개한 허필용씨의 이야기 역시 이 날의 주제였던 '시작과 끝'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36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허필용씨. 하나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평범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위대함이 느껴지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직장에서 아내도 만나 결혼하고 한 평생을 보냈던 허필용씨는 직장이 그저 일터가 아닌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니 그 곳을 떠나는 소회와 상실감이 어찌 없을까. 은퇴자가 갖게 되는 막막함이 있지만 함께 온 아들과 딸은 그가 그래도 든든해하는 의지처이기도 했다. 12월 31일자로 정년퇴직하지만 3개월 휴가를 줘서 마지막 출근을 하게 됐던 날 딸이 차려줬다는 아침상의 이야기에서 그가 느꼈을 고마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왜 아침상을 차려주셨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딸은 "일부러 기억을 했다"고 했다. "아빠가 마지막 출근인데 어떤 심정이실까 저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해드릴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딸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따뜻하게 느껴졌다. 허필용씨는 조심스럽게 올해 먼저 떠나간 아내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은 직장을 떠나게 됐는데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고. 딸이 아버지에게 마지막 날 아침상을 차려드린 데는 바로 그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해드리려는 마음이 있었던 거였다. 

 

올 7월 암으로 사별했다는 아내를 매일 생각한다는 허필용씨는 "퇴직의 의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는 상실감"이 더 많고 늘 함께 했던 사람을 먼저 보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리다고 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보다는 남편과 아이들 걱정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아내에게 전한 허필용씨의 영상편지는 짧아도 우리네 삶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박순애. 나란 사람 만나서 6년 연애하고 29년 동안 우리가 부부로 살았어. 인생 살다보니 이런 일 저런 일도 많이 겪었고, 같이 살면서 나는 그대와 같이 살았던 시간들이 내 몸 속에 다 녹아있어. 행복했어.. 자기가 걱정하지 않게 아이들 잘 뒷바라지하고 하늘에서 만났을 때 나 이렇게 살았다고 자랑할게. 그 때 다시 만나면 말 많다고 흉봐도 좋아. 할 얘기 많이 있어." 

 

유재석은 엽서로 보내 준 자기님들의 사연 중, 올 해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누구냐는 질문에 어느 한 사람을 꼽을 수 없다며 이렇게 답했다. "한 분 한 분 인생을 어떻게 보면 다 드라마이고 영화입니다." 실로 이 말은 사실이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지금껏 만난 분들의 이야기는 뭐 대단할 것 없는 소박한 삶들이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편의 드라마, 영화 아닌 게 없었다. 누구나 그렇게 한 세상 살다 떠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삶이 이토록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비춰주고 있었으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지만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점에 있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모두 한 편의 드라마고 영화라는 걸 말해주며.(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