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일기’, 농사의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는 충분하지만

tvN 새 예능프로그램 <식량일기>가 첫 회에 주로 화제가 된 건, 과연 직접 알에서부터 부화시켜 키운 닭을 과연 잡아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즉 출연자들이 처음 상견례(?)를 할 때 사온 닭과 식재료들로 닭볶음탕을 해먹었을 때는 그토록 맛있기만 했던 그 음식을, 이제 그 재료들까지 직접 생산해 만들어먹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지자 과연 키운 닭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딜레마가 생겼던 것. 

이는 닭을 식량으로 보느냐 아니면 관계를 맺은 하나의 생명으로 보느냐의 차이였다. 내가 직접 키우지 않고 누군가 잡은 닭은 아무런 감정 교환이 없었다는 점에서 식량으로 볼 수 있지만, 알이 부화되어 나온 병아리들을 손수 키우며 그 과정을 들여다본 이들은 쉽게 그 닭을 식량으로 치부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중간에 갑자기 진중권과 최훈을 등장시켜 어찌 보면 ‘철학적’일 수 있는 이 딜레마를 두고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식량일기>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딜레마이기도 했다. 즉 알에서부터 병아리가 되고 또 병아리가 닭이 되는 그 과정을 담는 방식에 있어서, 감정을 부여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재미 포인트가 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고 있는 ‘식량’이라는 관점을 보여주는 데는 불편함이 생겨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자라는 작물들이나 성장하는 닭을 그저 식량으로만 보며 무심하게 다룬다면 프로그램의 재미 부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부화기에 달걀을 넣고 21일을 기다리며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탄생 과정은 신비하기까지 했지만 그렇게 감정을 부여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약간의 불편함은 피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 병아리가 닭볶음탕의 재료가 되는 걸 자꾸 상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현대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요리해 먹는 음식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길러진 것들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과물인 식량의 재료로서 닭고기를 요리해먹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그건 우리가 없는 것처럼 치부해온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어서라는 걸 이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가 충분해지는 만큼 <식량일기>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를 추구하기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농사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다. 농사의 과정을 보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보는 재미를 주기는 쉽지 않다. 이건 이미 <청춘불패>나 <인간의 조건> 도시농부편 같은 프로그램들이 가졌던 딜레마이기도 했다. 다큐적인 의미는 충분했지만 그렇게 의미가 강해질수록 예능적인 재미를 추구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는 것.

과연 <식량일기>는 직접 키운 닭을 먹는다는 사실이 주는 딜레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농사라는 소재가 갖는 의미만큼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다큐적으로는 흥미로운 실험이지만 예능으로서의 의구심이 남는 대목이다.(사진:tvN)

‘이리와 안아줘’, 비극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좋아해서 미안해.”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의 채도진(장기용)은 한재이(진기주)에게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진심. 어린 시절 나무와 낙원으로 서로를 부르며 바라봤던 그들이지만, 채도진은 이미 그 때부터 그의 사랑이 만들어낼 비극을 예감했던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감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낙원을 밀어내려고도 했지만 이미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 그의 아버지 윤희재(허준호)에 의해 한재이의 부모가 모두 살해당했고, 나무는 낙원을 지켜내기 위해 아버지를 경찰에 넘겼다.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힌 윤희재가 자신이 잡힌 건 경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들 때문이라고 밝힌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윤희재가 체포된 건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끝없이 따라붙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채도진에게 달라붙었고, 그건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이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윤희재는 감방에서 자서전을 내며 자신이 그런 괴물이 되게 된 것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탓이라고 변명한다. 그는 그래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피해자들에게는 비수가 된다. 살인자의 거짓 변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윤희재는 감방에 들어와 있지만 엇나간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흉기를 휘두른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그가 쓴 책과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찢어지는 상처를 입는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채도진은 스스로 방송사를 찾아가 자신의 얼굴을 걸고 그 책은 거짓이라고 밝히는 인터뷰를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낙원에게도 그랬지만 마치 나무처럼 버티며 아픈 이들을 지켜주려 한다. 

그렇게 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피해자 가족들이 나타나 때리면 맞고 질책하면 죄송하다 사죄하며 버티고 서 있는 채도진은 진짜 나무 같은 인물이다. 모진 바람을 맞아도 묵묵히 서 있는 그에게 역시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엄마 채옥희(서정연)는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울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어도 눈물조차 피해자들에게는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채도진은 애써 눈물을 참는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을 때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

<이리와 안아줘>는 살인자의 아들 혹은 피해자의 딸이라는 굴레를 갖게 된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 모진 현실 앞에서 채도진 역시 어쩌면 저 살인자인 아빠가 변명하듯 악을 계승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채도진은 악이 그렇게 길러지고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변명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드라마는 앞부분에 윤희재가 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는 말을 부정하는 채도진의 “악은 그저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말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채도진과 한재이의 사랑은 그래서 서로 표현도 제대로 못하며 바라보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또한 그런 사랑의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삶이 살만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나무처럼 버텨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는 선택을 한 채도진과, 그 나무의 아픔을 느끼며 다가가 안아주는 한재이의 마음. 그들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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