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본질에 충실하면 장소는 문제 안 돼

10주년 글로벌 특집으로 꾸며진 것이지만 사실 KBS 예능 <1박2일>이 해외로 나간다는 건 여러모로 민감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건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의 본질과 멀어진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쿠바 같은 곳을 가려면 일단 가는 데만도 짧게 잡아 1박2일이 걸린다. 그러니 프로그램이 애초에 갖고 있던 콘셉트인 ‘하룻밤’의 틀을 스스로 깨는 일이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민감해지는 건 그 곳이 해외라는 사실이다. <1박2일>은 지금껏 국내의 곳곳을 찾아가 그 곳의 이야기나 숨겨진 여행지로서의 가치 같은 걸 재미있게 보여준다는 것이 중요한 프로그램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가끔 있었던 해외 특집, 이를테면 백두산을 간다든지 하얼빈을 가는 등의 특집들은 늘 민감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처럼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해외로 나가는 걸 일상사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들을 계속해서 제시해왔던 <1박2일>이 국내만을 고집한다는 건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준다. 제 아무리 <1박2일>이 국내여행을 모토로 한다고 했어도 거기에만 머무는 것이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10주년 글로벌 특집을 보니, 이제 <1박2일>도 너무 그 본연의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를 나가더라도 그만한 분명한 목적과 명분이 있다면 국내에만 머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행보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번 글로벌 특집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두 팀으로 나뉘어 카자흐스탄과 쿠바로 향한 <1박2일>은 물론 특유의 예능적인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이 거기에 간 이유를 명백히 드러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 한인 후손들이 그 불모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오며 지금껏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이 해외 특집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그곳을 직접 수로를 파 물을 대고 농사를 지어 ‘농사의 신’이라 불리기까지 했다는 고려인들. 거기서 만난 세 자매와 갖가지 게임을 하며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건 <1박2일>이 가진 토속적인 정서와 잘 맞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쿠바에서 만난 한인 후손들과의 만남에서도 똑같이 보여졌다. 우리에게 ‘애니깽’으로 잘 알려진 그 곳에 초기 정착했던 한인들의 힘겨웠던 삶이 고스란히 포착되었고, 그 힘겨운 삶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먹을 걸 줄여가며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로 보냈던 그 숭고한 삶이 재조명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 건 이들이 여러 세대를 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삶과 문화를 여전히 지켜나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건 음식이었다. 카자흐스탄이나 쿠바나 이역만리에서 살아온 그들이지만 그들이 대접을 위해 내놓은 음식들은 출연자들이 감탄할 만큼 우리네 입맛 그대로였다. 

카자흐스탄과 쿠바 양 측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 합창이 한 화면에 채워지는 장면은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아리랑이라는 노래 한 곡으로 이어지는 뿌리를 실감하게 했다. 누구를 만나 기쁠 때나 또 헤어지게 되는 이별의 순간에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아리랑. 그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그래서 해외특집이라고 해도 <1박2일>이 가진 한국적인 색깔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물론 <1박2일>은 국내의 숨은 여행지들을 찾아내 소개한다는 그 기본적인 명분을 저버릴 수 없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해가는 여행 트렌드와 방송 트렌드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도가 절실해 보인다. 이번 해외 특집은 그래서 <1박2일>이 스스로의 껍질을 벗어내더라도 그 본질에 충실하면 해외라고 해도 괜찮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가끔씩이라도 해외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의 삶을 따라가 보는 특집은 그래서 앞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사진: KBS)

‘황금빛 내 인생’, 재벌가의 갑질에 대처하는 아빠들의 각성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것인가.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을 보면 숨죽이며 상황들을 받아들이고만 살아오던 아빠들이 있다. 서민 출신이지만 노명희(나영희)와 결혼해 재벌가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살아온 최재성(전노민)과, 한 때는 중소기업을 운영해왔지만 사업이 망하고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하며 살아온 서태수(천호진)가 그들이다. 

드라마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워놓은 구도 탓이겠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엄마들이다. 사적인 욕심 때문에 재벌가 딸을 바꿔치기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인물이 바로 양미정(김혜옥)이고, 최도경(박시후)과 서지안(신혜선)이 가까워지는 것도, 서지수(서은수)가 선우혁(이태환)과 사귀는 것도 자신들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며 갖가지 갑질로 방해하는 인물이 바로 노명희다. 

드라마의 전반부가 주로 양미정이 딸들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일로 인해 생겨난 파장들을 왜곡다뤘다면 후반부는 노명희가 자신의 자식들이 양미정의 집안과 얽히는 걸 막기 위해 벌이는 범죄에 가까운 갑질들로 인한 파장을 다뤘다. 그 결과는 양갓집 자식들이 모두 집을 떠나 각자의 삶을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도에서 빠져버렸거나 소외된 인물들이 바로 아빠들이다. 보통의 평범한 가정이라면 엄마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고 하더라도 아빠들이 집안 대소사에 의견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아빠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기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아빠들의 이런 수동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삶이 가정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구도를 세운 건 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네 아빠들이 가진 양면적인 문제를 서태수와 최재성을 통해 담아내고, 어떤 면에서는 이들의 각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드라마가 그려내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 그 각성을 먼저 보인 아빠는 서태수다. 그는 가족들만을 생각하며 자기희생적으로 살아온 삶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확인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찾으려 집을 떠난다.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아니라 오로지 서태수라는 개인의 삶을 찾아나가는 것. 

그가 변화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극적인 장면은 서지안과 최도경이 사귀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집을 찾아와 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노양호(김병기) 회장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맞서는 서태수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딸에 대한 억측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노양호에게 일방적으로 뺨을 맞으면서도 그를 노려보는 서태수는 더 이상 이 모든 상황들에 수동적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의 각성을 보여준다. 

한편 노명희의 폭주 앞에서 딸 서지수(서은수)마저 삶이 파탄날 지경에 이르게 되는 걸 보게 된 최재성 역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 마주한다. 분노하는 최재성은 노명희 앞에 나서 그저 눌러놓고만 있던 분노를 터트린다. 과거 서지수를 잃어버리게 된 이유가 외도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노명희 때문이 아니었냐고 토로하는 것.

그간 지독할 정도로 당하기만 하는 삶을 살아오고, 자기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던 아빠들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부장의 귀환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과거 아빠들의 삶(자기 삶이 아닌 가족들을 위한 삶 혹은 금력에 의해 억눌린 삶)이 왜곡시킨 것들을 이제 충분히 알게 된 그들이 자신의 삶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후,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됐다는 걸 보여준다. 

서태수와 최재성이라는 두 아빠의 각성은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이 다루는 아빠 세대들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빠들도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그럭저럭 버텨내는 삶을 살기 위해 눌러두었던 자신만의 삶을 찾아내고 제 목소리를 낼 때라는 것. 이들 아빠들이 이 꼬일 대로 꼬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뜻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그래서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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