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슈퍼7> 콘서트 논란

 

결국 <슈퍼7> 콘서트는 취소되고, 리쌍의 길과 개리는 예능에서 전격 하차한다고 밝혔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던 걸까.

 

<무한도전> 일곱 멤버들은 <슈퍼7> 콘서트를 열려고 준비해왔다. 굳이 <슈퍼7>이라 이름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콘서트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 콘서트를 주관한 (주)리쌍컴퍼니측은 이 사실을 분명히 공지한 바 있고, <무한도전> 김태호 PD 역시 이 콘서트가 <무한도전>과는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슈퍼7 콘서트(사진출처:(주)리쌍컴퍼니)

사실 누구나 하고 싶다면 콘서트를 여는 건 그들의 자유다. 그만한 투자를 할 것이고, 거기에 합당한 입장료를 받을 것이다. 그게 잘못된 것은 없다. 하지만 <슈퍼7> 콘서트는 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슈퍼7> 콘서트가 실상은 <무한도전> 콘서트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무료 공연이 아니라는 점이었을 게다.

 

<슈퍼7> 콘서트를 <무한도전>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멤버들이 <무한도전> 멤버들 전원이고 그들은 다름 아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무한도전>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무료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이 콘서트는 <무한도전>이 방송을 위해 콘서트를 했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뮤직뱅크>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가수들이 나와 노래하는 무대가 시청자들과 방청객에게 공짜라고 해서 그들 가수가 하는 콘서트 역시 무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 같다. 방송은 공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동원된 관객들과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은 사실상 광고를 봐주는 비용을 지불한 것과 다르지 않다. 콘서트는 누군가 스폰서를 하거나 제작지원을 하지 않는 이상 유료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슈퍼7> 콘서트를 무료로 하는 방법은 스폰서를 받거나 MBC <무한도전>이 프로그램화 하면 가능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프로그램 제작자들과 기획자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그것이 방송될 만한 것인지, 그것을 통해 어떤 이익이 될 것인지를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즉 <슈퍼7> 콘서트가 <무한도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방송과 관련이 없다면 그것은 독립적인 행사로 봤어야 한다는 얘기다.

 

<무한도전>이 만들어낸 인기를 이용해 콘서트의 관객을 끌어 모으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난도 과한 면이 있다. 방송을 통한 인지도를 통해 콘서트를 성공으로 이끌려는 건 모든 방송인들의 욕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인지도를 갖게 된 임재범이나 윤도현, 박정현, 김범수가 콘서트를 통해 더 많은 대중들과 만나는 것은(그래서 이른바 돈을 버는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됐다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이는 <슈퍼7> 콘서트에 논란이 생기는 걸까. 그것은 다분히 정서적인 문제다. 그간 <무한도전>이 보여왔던 친 서민적이고 심지어 공익적인 느낌과 <슈퍼7> 콘서트의 입장료 얼마로 보여지는 느낌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은 이제 프로그램의 차원을 훌쩍 넘어선 어떤 서민을 대변하는 존재가 됐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슈퍼7> 콘서트가 입장료를 받고 라이브로 대중들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물론 그 입장료에 비해서 형편없는 무대를 선보였다면 비난받을 일이지만). 공익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비난하는 건 과한 일이 아닐까.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봐왔던 <무한도전> 멤버들을 라이브 무대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기회로 <슈퍼7> 콘서트를 지지해줄 수는 없었던 일일까.

<아랑>, 도대체 무슨 얘길 하려는 걸까

 

<아랑사또전>은 도대체 무슨 얘길 하려는 걸까. 보면 볼수록 기묘한 사극이다. 판타지 멜로인 줄 알았는데 액션에 미스테리에 심지어 공포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전설의 고향>에서 봤던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과 그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사또 이야기처럼 시작했지만, 그것은 이 사극의 1%도 안되는 전제에 불과했다.

 

'아랑사또전'(사진출처:MBC)

귀신을 보는 사또 은오(이준기)는 처녀귀신 아랑(신민아)이 가진 비녀가 자신이 어머니에게 줬던 것임을 알아채고 그녀의 죽음을 밝히는 일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갑자기 홍련(강문영)이라는 미스테리한 존재가 등장하면서 복잡해진다. 인간을 해하는 절대악이자 요괴인 홍련은 등장인물들과 모두 관련을 맺고 있다. 그녀는 은오의 어머니(아마도 죄를 짓고 쫓겨난 선녀 무연이 몸을 빌린)이고, 저승사자 무영(한정수)의 동생이며 아랑의 죽음과 관계된 인물이다.

 

홍련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는 미스테리하고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야기가 하나씩 단서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흘러가며 알 듯 모를 듯한 대사 몇 마디로 단서를 제시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마치 미로를 걷는 듯한 곤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시점이 은오나 아랑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전지적 시점에서 모든 인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옥황상제(유승호)나 염라대왕(박준규)의 시점이지만 이들은 좀체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지 않는다.

 

여기에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사극이 갖는 인물들 간의 계층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은오는 자기 스스로 “귀신들린 얼자”라고 표현하며 출신이 만든 한계와 설움을 드러내지만, 정작 이 사극에는 양반과 상놈 사이도 수평적 관계로 그려진다. 은오와 그의 하인 돌쇠(권오중)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이 사극은 인간과 귀신 혹은 인간과 천상의 인물들(옥황상제나 염라대왕, 저승사자 같은) 사이에도 위계를 그다지 느낄 수 없다.

 

이것은 양 사이에 걸쳐진 인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은오는 인간이면서 귀신을 보는 존재이고 아랑은 귀신이면서 시한부 생을 부여받은 인간이다. 홍련은 혼은 타락한 선녀이면서 동시에 육체는 은오의 어머니인 인물이다. 이 사극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은오와 아랑, 홍련이 이렇게 걸쳐진 인물이기 때문에 천상과 인간세계의 경계가 깨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 인간세계의 반상의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랑은 “죽으면 다 똑같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경계 짓기가 무의미하다는 걸 얘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랑사또전>은 이 구별 없는 세상을 그리려 한 것일까. 귀신과 인간이 공존하고, 천상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런 세계를 그림으로써, 인간 세계 속의 구별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부질없는 욕망의 소산이라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경계가 없는 기묘한 사극, <아랑사또전>은 그래서 불친절한 문제작이다. 액션이면 액션, 멜로면 멜로, 공포면 공포까지 각각의 장르들은 그 자체로 보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고 있지만 이것을 한꺼번에 이어 붙이고, 단계별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졌다. 이렇게 단서들을 꼭꼭 숨김으로 해서 반전을 노린 면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반전효과가 적은 것은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면서 기대감 또한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전은 기대감을 배반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먼저 이야기를 이해시키고 몰입시켜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끊임없는 이야기의 미로 속으로 빠뜨린 후, 결국에는 간단한 액션으로 문제를 풀어내거나 아랑과 은오의 멜로로 이야기를 끝맺음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허무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시청자들을 미로 속에 넣고 한껏 혼란에 빠뜨리는 작가의 악취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아랑사또전>은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걸까. 좀체 알려주지 않는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이미자 공연, 흑산도 아줌마는 소녀팬 같았다

 

서울에서 차를 달려 4-5시간 겨우 목포에 도착해 거기서 또 배를 타고 두 시간. 지난 15일 그 먼 거리에 있는 흑산도가 때 아닌 인파로 북적였다. 바로 국민가수 이미자(70)가 공연을 위해 섬을 찾은 것. 이미자는 1967년 ‘흑산도 아가씨’를 발표하고는 무려 45년 만에 처음으로 흑산도를 밟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 남달랐을 소회는 말하지 않아도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자 흑산도 공연(사진출처:MBC)

‘흑산도 아가씨’가 발표됐을 때 아가씨였을 할머니들은 구부정한 몸을 이끌고 공연장으로 나오셨다. 아마도 그 할머니 밑에서 ‘흑산도 아가씨’를 들으며 고달픈 섬 생활을 버텨냈을 아주머니들도 공연장에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햇볕과 물빛에 검게 탄 얼굴에는 힘겨운 삶의 흔적처럼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소녀 팬의 그것이었다. 이미자가 무대에 오르자 아주머니들은 소녀 팬처럼 열광하기 시작했다.

 

'엘레지(애가 哀歌)의 여왕'답게 이미자의 목소리는 세월을 비껴간 듯 여전히 관객들의 귀에 내려앉아 마음 한 구석에 숨겨둔 애절한 마음을 술술 풀어냈다. 칠십의 연세에도 2시간 동안 무려 22곡을 부르는 저력을 보여준 이미자의 무대에 흑산도 주민들의 서걱대는 마음도 풀어졌을 것이다. 왜 아닐까. 무려 두 차례의 태풍이 흑산도를 강타하고 지나간 후였다. 그것도 모자라 태풍 산바가 또 들이닥칠 것이라는 불안한 예고가 있었다. 공연장이 설치된 흑산도 항구에는 태풍을 피해 들어온 고깃배들이 저마다 불빛을 반짝이며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그 모습이 이미자 공연을 보러온 흑산도 주민들처럼 애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애절함과 거친 환경, 게다가 먼 거리에 있어 문화 사각 지대가 될 수밖에 없는 그 곳에서의 이미자 공연은 진정 노래의 힘을 알게 해준 공연이었다. 거친 삶을 위로해주고 다시 살 흥을 돋워주는 것이 노래라면 이런 곳이야 말로 노래가 필요한 곳이 아닌가. 아마도 수십 년 간 이런 대형 공연을 접해보지 못했을 흑산도 주민들의 환호성은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이미자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백아가씨’, ‘흑산도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을 연달아 불렀을 때였다. 그러고 보니 이미자의 이 노래들은 모두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의 가사는 섬처럼 소외된 지역에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이 아닐는지.

 

목포에서도 100킬로가 떨어져 있는 흑산도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기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풍랑에 서울 못간 흑산도 아가씨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흑산도 아가씨’처럼, 몇 번 공연을 기획했다가도 바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45년 만의 이미자 첫 흑산도 공연. 그 공연을 위해 이 공연을 주관한 MBC측은 장비를 옮기는 데만 무려 2주가 걸렸다고 한다.

 

우리는 도시에서 아이돌이다 뭐다 하며 쉽게 공연을 찾아볼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정약전 선생이 유배됐던 그 외로운 섬 흑산도 같은 문화 소외 지역에서 이제 칠순을 맞는 이미자가 정성을 다해 부르는 노래는 더 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계기로 좀 더 많은 소외 지역에서의 문화 행사가 많아지기를.

<놀러와>, 자폭 토크의 묘미

 

<놀러와>가 살아나고 있다. 아직 시청률 면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상승한 시청률(5.4% agb닐슨)은 <힐링캠프>(6.9%)를 넘보고 있다. 물론 시청률은 언제든 또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건 <놀러와>가 개편 후 시도한 변화가 의미 있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도대체 <놀러와>는 어떤 변화를 주었던 것일까.

 

'놀러와'(사진출처:MBC)

그 변화가 극명히 보이는 건 <트루 맨 쇼>다. 유재석은 새로 마련한 <트루 맨 쇼>를 “요즘 <놀러와> 보시는 분들 많지 않다”는 말로 시작했다. <놀러와>가 가진 현재의 위치를 명확히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각오를 다진 후 <트루 맨 쇼>를 ‘국내 최초 리얼 위기 토크쇼’라고 명명했다. 웃음을 주기 위한 자폭 토크에 가깝지만, 그 안에는 절치부심한 유재석의 의지가 엿보인다.

 

사실 자신의 위치를 솔직하게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이것을 밝힘으로서 얻을 수 있는 건 많다. 그 절실함 자체를 토크쇼의 새로운 화법으로 제시할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도 지지(현재는 낮지만 노력하겠다는 것)를 호소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실제로 <트루 맨 쇼>는 그 절실함을 내세워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솔직한 토크를 승부수로 띄우고 있다.

 

먼저 유재석의 변화가 눈에 띈다. 나경은 아나운서와 다시 태어나도 결혼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결혼은) 천천히 하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자신이 클럽을 좋아하고 자주 다녔던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고 당시 유행했던 춤을 추어 보이기도 한다. <놀러와>에서 줄곧 앉아서 게스트들에게 질문하고 이야기를 받아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트루 맨 쇼>에서 유재석은 MC라기보다는 자신 또한 출연자의 하나로서 솔직하게 이야기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권오중은 이 솔직한 토크쇼의 구심점이 된 느낌이다. 그는 어린 시절 쿵푸를 배웠던 사연을 얘기하며 "삼형제가 다 약골이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어머니를 임신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고, 6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 전 차 안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주민 신고로 경찰서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심지어 치질로 병원에 가서 겪은 곤혹스러운 순간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털어놓으면서 동시에 권오중은 <놀러와>를 대놓고 비판하는 자폭 토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원희와 유재석이 안경을 갖고 개그를 하려 하자 권오중은 “진부하다”며 이것이 ‘위기의 이유’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졸업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을 누구와 갔냐”고 묻는 유재석에게 “누구랑 갔겠어요. 친구랑 갔지”라며 “아직 대학교 졸업을 못해 잘 모르는 구나”라고 말해 유재석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솔직함을 무기로 권오중이 전방에서 거침없이 이야기를 털어내면 김응수는 그 이야기를 받아서 요리하는 편이다. 권오중이 결혼 전 아내와의 차안에서의 데이트 이야기에 “과연 껴안고만 있었을까” 의구심을 드러내는 MC들에게 김응수는 “그렇게 쉽게 경찰이 연행하지 않는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도 3분은 현장을 지켜본다. 적어도 차가 들썩거리는 걸 보고, 눈으로 뭔가 확인한 것이 있어서 연행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박재범이 클럽이야기를 하다가 ‘부비부비’를 언급하자, “부비부비가 뭐야? 먹는 건가?”라고 말해 유재석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예능 늦둥이답게 기존 토크쇼의 문법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툭툭 던지는 김응수는 20대 후반에 돈이 없어 조카 저금통을 털은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술을 얻어먹기 위해 선배들 앞에서 추었다는 진진바리 애교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유재석과 권오중, 김응수의 조합에 엉뚱한 면모를 보이는 박재범, 그리고 여성이지만 남성 캐릭터 콘셉트로 남성들에게 조언을 던지는 김원희까지. <트루 맨 쇼>는 확실히 과거의 <놀러와>와는 차별화를 이룬 느낌이다.

 

<힐링캠프>가 구사하는 깊이 있는 토크는 또한 단점도 갖고 있다. 그것은 게스트에 따라서 대중들의 관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진짜 관심 있는 게스트(주로 비연예인이다)라면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늘상 보던 연예인이 자신의 연예생활 이야기의 고충을 늘어놓는다면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게 된다. 이것이 최근 몇 회의 연예인 게스트를 불렀던 <힐링캠프>가 시청률에서 추락한 이유다.

 

어쨌든 <힐링캠프>가 게스트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로 차별화를 이뤘다면, 개편된 <놀러와>는 깊이는 아니라도 MC들의 거침없고 솔직한 이야기로 변별력을 만들고 있다. <힐링캠프>가 힐링이라는 부드러움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게스트에게 강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공격성을 드러낸다면, <놀러와>는 그 공격적인 토크를 스스로에게 던지는 식이다. 자신들의 처지를 솔직히 밝히고 그 절실함을 무기 삼아 자신의 치부까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자폭 토크’는 그래서 <힐링캠프>와는 다른 토크의 묘미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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