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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너 거기 있었니?" 어린 시절 이런 얘길 참 많이도 들었다. 극도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말수도 없는데다가 막상 입을 열어도 그다지 빵빵 터트리지 못했던 나는 말 그대로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심지어 말할 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아서, 무슨 얘길 꺼낼 때마다 이걸 말해 말어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 시골 아이가 떡 하니 서울 한 복판으로 전학을 왔으니 이건 투명인간이 따로 없었다.
그 때 나는 대신 아주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었는데, 어디 바깥에 나가면 늘 뭔가를 주워오는 것이었다. 누나는 그런 내가 신통했던지 "어디 바닥에 그런 게 다 있어? 난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없던데...", 하곤 했다. 그렇게 내가 주워오는, 누군가 버린 물건들은 하나하나 모여서 내 책상의 한 구석을 장식하곤 했다. 존재감 없는 아이는 그 누군가 버린 물건들을 갖고 책상에 앉아 혼자 놀이를 했다. 팔 한쪽이 떨어진 울트라맨이 주인공이고 꼬리가 잘린 공룡이 악역이며, 문짝 하나가 빠진 장난감 자동차가 울트라맨이 공룡을 이기고 구해야 하는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친구 없이도 그렇게 혼자 몇 시간을 놀 수 있었다. 그것들이 바로 내 친구였으니까.
'추노'(사진출처:KBS)
어린 시절과 비교해보면 나는 '미칠' 정도는 아니어도 제법 어느 정도 존재감을 갖고 있는 편이다(착각인가?). 그 옛날 존재감 없던 아이가 지금 이렇게 글줄이라도 써가며 살아가고 있는 게 신기해 보이기도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참 기적 같은 게 있어서 그 때의 상황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때 어디선가 자꾸만 물건들을 주워왔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버려졌을 그 처지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그 아이가 여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아이가 그 버려진 물건들을 갖고 만들어내는 스토리에는 늘 '미친 존재감'이 있었다. 울트라맨은 어디선가 팔 한 짝을 잃어버렸지만 늘 마지막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친 존재였으니까. 그때 막연히 했던 그 스토리 훈련(?)이 어쩌면 지금 늘 스토리를 쓰며 사는 나를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늘 주워오던 그 아이는 그 순간부터 '미친 존재감'을 꿈꾸고 실현시키려 했는지도.
(이 글은 사보 '모터스 라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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