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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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 '블랙아웃', EIDF의 진심을 알겠네

D.H.Jung 2013. 10. 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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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기대감 한껏 높인 개막작 '블랙아웃'

 

무려 올해 10회를 맞는 EBS 국제 다큐영화제(EIDF)는 과연 그만한 가치를 평가받고 있을까. 사실 간담회 때문에 EBS를 찾기 전까지 나는 이 다큐영화제가 가진 위상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간담회는 꽤 화기애애하면서도 진지했다. 그 진지함은 EBS가 가진 다큐멘터리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방송사가 정규 편성을 제쳐두고 거의 일주일간 내내 다큐멘터리를 틀어준다는 것은 실로 모험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전세계 거의 유일하게 온오프로 방영되는 영화제로서 EIDF는 진심으로 다큐가 가진 가치를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블랙아웃(사진출처:EIDF)'

개막작으로 선정된 <블랙아웃>은 이 EIDF가 가진 진심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서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기니에서 밤마다 벌어지고 있는 이 기막힌 풍경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도 다큐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형설지공.' 반딧불이를 모아 또 눈에 비친 달빛에 기대 책을 읽었다는 고사를 떠올리게 해주는 이 영화는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밤만 되면 그나마 불이 켜져 있는 공항이나 주유소 근처로 공부를 하기 위해 몰려드는 학생들을 그들의 담담한 내레이션과 함께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빛과 어둠으로 선명하게 대비된 이 나라의 풍경만으로도 이 나라의 부조리를 그 어느 강렬한 르뽀보다 더 준엄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본래 카메라가 포착하는 피사체는 그 카메라 바깥의 일들을 에둘러 알려주기 마련이다. 가로등 아래 의지해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저 가녀린 가로등만큼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둠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부라는 작은 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군사독재의 부패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의 지성에 불을 꺼서는 안되는다는 것을 그들은 보여주는 셈이다.

 

 

'블랙아웃(사진출처:EIDF)'

<블랙아웃>은 이처럼 한 국가가 직면하게 된 문제를 빛과 어둠이라는 풍경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포착해낸다. 이것은 다큐멘터리라는 다소 작게 여겨지는 영상이 가진 힘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찍은 작은 다큐는 그간 어둠 속에 덮여있던 부조리를 밖으로 드러내는 작은 빛의 역할을 한다. 어둠이 무지의 영역이었다면 빛은 앎의 영역이다. 다큐멘터리는 저 기니의 아이들이 의지하고 있는 가녀린 불빛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셈이다.

 

동시에 <블랙아웃>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도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EBS가 바라보는 다큐멘터리의 가치를 새삼 보여준다. EBS 홍보팀의 서동원 부장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한 권의 인문학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 다큐멘터리가 갖는 교육적인 효과가 EBS라는 방송사의 비전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즉 EIDF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특화시킴으로서 우리 사회의 <블랙아웃>된 곳에 공공재로서의 교육의 빛을 제공하겠다는 EBS 의지의 산물처럼 보인다.

 

 

'블랙아웃(사진출처:EIDF)'

다큐멘터리가 이처럼 중요한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상파 다큐멘터리들은 점점 시청률 때문에 밀려나고 있는 추세다. 한때 <MBC스페셜>이 생활 다큐를 전면에서 이끌어가고 또한 '눈물 시리즈' 같은 대작들을 선보였고, KBS도 <30분 다큐>나 <미지수> 같은 다큐의 일상화를 꿈꾸었지만 최근 들어 방송 다큐멘터리들은 오히려 예능과 결합해 본래의 맛에서 멀어지고 있는 추세다.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의 불편한 심사는 더더욱 방송 다큐멘터리의 자율성을 빼앗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번 EIDF를 통해서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재미있는 장르인가를 새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실감나게 극적이며,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흥미로운 다큐의 묘미. 개막작 <블랙아웃>이 보여준 EIDF의 진심은 이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다큐 영화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18일부터 25일까지 영화관과 EBS TV를 통해 방영되는 다큐멘터리들은 그 하나하나가 인문학책 한 권이 주는 지성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줄 것이다.

 

<블랙아웃> 감독 에바 웨버는...

 

'에바 웨버 감독(사진출처:EIDF)'

 

독일 태생. 주로 런던에서 다큐와 픽션 양쪽 모두에서 활동하고 있다. 선댄스, 에딘버러, BFI 런던 등 무수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특히 <100m 위의 고독>은 국제 다큐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단편으로, 사이트 앤드 사운드 영화 리뷰에서 올해의 다큐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번 EIDF에서는 에버 웨버 컬렉션으로 <밤, 그리고 평화>, <100m 위의 고독>, <철로 만든 집>이 상영될 예정이다.

 

 

'블랙아웃(사진출처:EIDF)'

 

EIDF 관련 정보--------------------------------

 

10월 18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제 10회 국제다큐영화제는 고려대학교 KU시네마트랩, 건국대학교 KU 시네마테크, 인디 스페이스, EBS SPACE 등에서 관람할 수 있고 부대행사로 비틀즈의 비서이자 비틀즈 팬클럽의 관리자였던 프레다 켈리와 <Good Ol’ Freda>의 프로듀서인 제시카 로우슨이 참석한 자리에 그녀의 다큐 <Good Ol’ Freda>를 특별상영하는 <비틀스 데이(10월24일 목 오후 4시반)>가 있을 예정이다. 행사에는 우리나라의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인 멘틀즈와 타틀즈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다큐 영화들은 EBS를 통해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는 10월20일(일) 밤 10시45분에 방영된다. 다큐의 진수를 느끼고 싶은 분께 강추하는 바이다.

(EIDF 웹사이트(www.eidf.org)에서 총 10개 작품을 자유 관람할 수 있는 <페스티벌 패스>를 1만원에 구입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