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작가와 시청자들의 두뇌게임, 누가 프레데터인가

 

도대체 프레데터는 누구일까.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 최란 작가가 펼쳐놓은 시청자들과의 두뇌게임이 흥미진진하다. 단연 초미의 관심사는 누가 진짜 프레데터(살인마)일까 하는 점이다. 이제 6회까지 진행됐을 뿐이지만, <마우스>는 초반부터 성요한(권화운)이 프레데터일 거라는 정황들을 너무 대놓고 보여준 바 있다.

 

연쇄살인마였던 아버지 한서준(안재욱)처럼 의사인데다, 수술을 하는 데 있어서 전혀 감정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나, 그 집에 어쩌다 가사도우미로 가게 된 봉이 할머니(김영옥)가 지하에서 벽 한 가득 붙어 있는 살인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고는 급하게 도주하고, 그 뒤를 따라왔던 성요한의 모습 등이 그렇다. 결국 봉이 할머니는 살해당했고, 드라마는 그 살인자가 성요한일 거라는 걸 노골적으로 암시했다.

 

하지만 스릴러 장르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이제 드라마 초반에 그렇게 쉽게 살인마의 정체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워진다. 성요한이 프레데터일 거라고 자꾸만 드라마가 몰아갈수록 시청자들은 그가 아닐 거라고 불신하게 된다. 마치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지난 4회에서는 엔딩에 염소가면을 쓰고 납치된 아이 앞에 정바름(이승기)이 나타나는 장면을 보여줘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바 있다.

 

하지만 정바름이 살인마일 거라 추측하게 만든 그 소름 엔딩을 보여준 일주일 후 5회 방영분에서는 그것이 진짜 살인마를 자극하고 끌어내기 위해 정바름과 고무치(이희준) 그리고 셜록홍주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최홍주(경수진) PD의 가짜영상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그렇게 한 번 꼬아놓자 정바름은 진짜 살인마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바른 순경처럼 보이게 됐다. 결국 다시 시청자들의 의심은 성요한이 프레데터일 거라는 쪽으로 움직이게 됐다.

 

그리고 실제로 성요한과 정바름이 대결하게 되는 장면은 누가 봐도 성요한이라는 프레데터를 잡기 위한 정바름의 헌신처럼 보였다. 성요한의 집에서 자신이 찍힌 사진들이 지하 밀실 벽에 붙어 있는 걸 보고는 급히 집으로 달려가 그 집에 있던 오봉이(박주현)를 도망치게 하는 장면이나 일방적으로 성요한이 정바름을 둔기로 내리칠 때 마침 오봉이 전화를 받고 찾아온 고무치가 총을 쏴 성요한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그렇다.

 

이 모든 장면은 결국 성요한이라는 프레데터를 정바름의 헌신과 고무치의 총격으로 붙잡게 되는 상황처럼 보였지만, 작가는 이것 역시 일종의 트릭이었다는 걸 엔딩에 보여준다. 병실에서 깨어난 정바름이 새장 속의 새를 꺼내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리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 결국 진짜 프레데터는 정바름이었다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벌어졌던 성요한이 했던 행동들과 말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목해야 할 건 성요한이 프레데터일까 의심되던 순간에 항상 정바름도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교도소에서 나치국(이서준)이 상자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등장했을 때, 성요한이 그 교도소에 찾아온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 자리에는 정바름도 있었다. 또 봉이 할머니를 추적한 인물은 성요한이 맞지만, 그 살해 현장에는 정바름도 있었다. 자신이 범인을 추적했다 말했지만 그건 정바름의 증언일 뿐이었다.

 

만일 정바름이 프레데터라면 성요한은 오히려 그를 추적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집 지하 밀실에 정바름의 사진이 있던 것도 그렇고, 유전자 검사를 한 사실이나 어머니인 성지은(김정난)을 찾아와 "알고 계셨죠? 아들이 살인마라는 걸."이라고 한 말에 오히려 단서가 있다는 것. 성요한이 말한 '아들'은 자신이 아닌 성지은의 또 다른 아들(한서준과 갖게 된 아들) 즉 정바름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추정대로 생각해보면 성요한이 정바름을 추적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어린 시절 한서준의 아들(김강운)은 성지은이 재혼해 꾸리게 된 가정을 파탄 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지은이 재혼해 낳은 아들(아마도 성요한일 수 있는)을 죽이려고도 했고, 결국 새 아빠를 살해했던 인물이니 말이다.

 

물론 아직 모든 걸 완전히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정바름이 새를 죽여 버리는 장면을 통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모든 사실들을 뒤집어 생각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추론일 뿐이다. 하지만 만일 이 추론대로 정바름이 프레데터라면 그 역할 캐스팅으로 이승기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늘 바른 이미지의 이승기가 아닌가(게다가 극중 이름까지 정바름이다). 그러니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이 인물을 통해 매회 예상을 뒤엎는 소름 반전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또 한 주를 어떻게 기다려야 하냐는 볼멘 목소리들이 나올 만큼 소름 돋는.(사진:tvN)

'마우스'의 시간 순삭, 이희준 얼굴만 보다 한 시간이 훅

 

역대급 몰입감이다.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에서 프레데터와 고무치(이희준)가 방송을 통해 대결을 벌이는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말 그대로의 '시간순삭' 몰입감을 안겼다. 프레데터를 자극해 수사망을 좁혀가려는 고무치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오히려 그런 고무치를 곤경에 빠뜨리는 프레데터의 반전에 반전으로 펼쳐지는 두뇌싸움. 그것이 생방송으로 연결되어 방송사들 간의 경쟁과 그걸 보는 시민들의 반응이 더해지면서 이 에피소드는 한 시간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보여주었다.

 

<마우스>가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에 능할 거라는 건, 애초 이 드라마 첫 장면에 먹구렁이가 있는 상자 속에 쥐를 넣는 그 상황에서부터 예고된 바 있다. 그 장면을 본 아이들이 먹구렁이에게 잡혀 먹힐 쥐를 끔찍해하며 도망쳤던 것과 달리, 드라마는 오히려 쥐가 먹구렁이에 반격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우스>는 누가 먹구렁이이고 또 누가 쥐인지를 숨긴 채, 이 둘 사이의 치열한 대결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동력으로 끌고 가는 드라마다.

 

지난 회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나 선한 캐릭터였던 동네 순경 정바름(이승기)이 갑자기 고트맨 가면을 쓴 납치된 아이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혼돈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동네 주민이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걸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의 '바른 생활 사나이'인 정바름이 프레데터(최상위 포식자로서의 연쇄 살인마)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청자 게시판은 폭주했다.

 

하지만 이번 회에서 그 모습은 일종의 트릭이었다는 게 금세 밝혀졌다. 즉 프레데터를 자극하기 위해 정바름과 고무치 그리고 '셜록홍주'를 진행하는 최홍주 PD(경수진)가 일부러 납치된 아이의 모습을 가짜로 연출해 찍었던 것.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오히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프레데터에 의해 거꾸로 이용되었다. 즉 프레데터 역시 가짜 영상을 찍어 방송국에 먼저 보냈고 그걸 방영하게 만들어 그것이 조작방송이었다는 사실로 이들을 곤경에 빠트리려 했던 것.

 

이렇게 고무치와 프레데터의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고무치는 그 간의 피해자들이 가진 공통점을 찾아냈다. 사망한 피해자들의 죽음이 모두 동화와 관련이 있었고, 그 동화들은 각각 나태, 성욕, 교만, 욕심, 식탐 등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을 담고 있었다. 즉 프레데터는 신이 정한 7대 죄악을 행하지 않는 이들을 죄인으로 처단했던 것. 그리고 남은 또 하나의 죄는 '분노'였고 프레데터가 '분노하지 않아' 죄인으로 지목한 대상은 납치된 아이가 아니라 고무치의 형 고무원(김영재) 신부였다. 끝까지 분노하지 않는 고무원에게 분노하라며 고무치는 무릎까지 꿇고 애원했지만, 사랑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꺼낸 고무원은 고무치가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프레데터에 의해 도륙되었다.

 

놀랍게도 이 한 시간 동안 방영된 고무치와 프레데터의 대결은 거의 대부분 분량이 고무치를 연기한 이희준에 의해 채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건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분노, 애원, 슬픔 같은 다양한 감정변화들이 이희준의 연기를 통해 채워졌다. 그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으니.

 

참혹하게 살해당한 형의 사체 뒤로 '내가 신이야'라 적힌 프레데터가 남긴 글이 비춰지며, 이희준이 보여주는 오열과 분노는 향후 이 드라마가 본격화할 치열한 대결양상을 예감케 한다. 이희준은 과거 '헤드헌터'를 추격하다 가족의 끔찍한 비극을 겪게 된 박두석 팀장(안내상)과 같은 처지가 됐고, 그와 정바름, 오봉이(박주현)가 어떻게 공조해 프레데터와 싸워나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지금껏 다양한 작품에서 개성있는 감초 역할로 드라마의 맛을 살려내곤 했던 이희준. 이번 <마우스>에서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훌쩍 '순삭되는' 연기의 폭발을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역주행의 아이콘 브레이브걸스, 밀보드에서 보이는 이들의 진심

 

"진심으로 떴으면 좋겠습니다. 백령도 왕복 시간만 서울에서 12시간 이상 걸리고 섬에서 못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백령도 위문공연을 브레이브걸스분들이 새벽부터 휴가 나가는 병사들 사진 다 찍어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합니다. 오랫동안 높이 기억에 남는 그룹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tvN 예능 <유 퀴즈 온더 블럭>에 나온 브레이브걸스가 과거 백령도에서 위문공연을 한 것에 대해 당시 그걸 본 한 분이 남긴 댓글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건 아마도 브레이브걸스가 최근 4년 전 발표했던 '롤린(Rollin)'이 갑자기 차트 역주행을 하고, 급기야 SBS <인기가요> 1위 곡으로 등극한 것이 그저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일 게다.

 

이른바 '밀보드(밀리터리 빌보드)' 차트라고 불리며 군 장병들이 심지어 '인수인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밀어주자"고 대거 나서게 된 데는 저 백령도 위문공연의 사례 같은 이유가 깔려 있었다. 그 먼 곳까지 일일이 찾아가 성심성의껏 공연을 펼쳐 보인 브레이브걸스의 '진심'이 통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롤린'이라는 곡이 그다지 매력적인 곡은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롤린'은 한 번 들으면 자꾸만 저도 모르게 따라하게 만드는 '중독성'이 강한 곡이고, 특유의 시원스런 청량감이 느껴지는 브레이브걸스의 목소리와도 잘 어울려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곡이다. 이렇게 청량감이 느껴지는 노래에 브레이브걸스 특유의 섹시한 춤동작들은 묘한 균형감을 만든다. 그래서 위문공연 영상을 통해 보면 청량한 목소리, 섹시한 춤동작 하지만 진심 가득한 행복감마저 느껴지는 브레이브걸스의 살아있는 표정들이 더해져 보는 내내 미소 짓게 만든다.

 

하지만 '롤린'의 역주행 신화에는 역시 밀보드라 불릴 정도로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준 위문공연 군 장병들의 '리액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음악프로그램에 나와서 부르는 '롤린'에서조차 군 장병의 환호성이 환청처럼 들릴 지경이다. 후크 부분에서 장병들이 일제히 입을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와, 특유의 '가오리댄스' 동작을 따라하는 모습은 '롤린'을 더더욱 역동적으로 들리게 해줬다.

 

유재석이 짚어주듯 브레이브걸스가 '존버(존중하며 버티기)'의 아이콘이 된 건 그들의 성공이 타인들에게도 큰 위로를 준다는 측면에서 이 신드롬을 더욱 크게 만든 면이 있다. 이들이 그간 다닌 위문공연만 약 62건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냐는 질문에 이들은 거꾸로 그렇게 불러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답했다. 그렇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진심을 담아서 하며 버텼기 때문에 그것이 누적되어 지금의 결과가 있었다는 것.

 

최근 들어 이른바 '역주행'이 마치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주 등장한다. 지금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주목받게 되어 우연처럼 보이는 이들의 성공 그 뒤안길을 들여다보면, 이제는 대중들이 참여함으로써 흐름을 바꾸고, 역주행까지 만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그건 진심이다. 누가 뭐래도 묵묵히 노력해온 그 과정들이 누적되어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바로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현 대중문화의 흐름을 브레이브걸스의 사례를 통해 보여줬다.(사진:tvN)

윤여정의 무엇이 우리는 물론 외국인들까지 '윤며들게' 할까

 

'윤며들다.' 최근 배우 윤여정에 의해 젊은 세대들의 유행어가 된 말로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뜻이다. 영화 <미나리>로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미나리>에 여우조연상으로 이름을 올린 배우. 해외에서는 'K할머니(K-grandma)'로 불리며 쿨하고 지혜로운 할머니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줬다 상찬 받는 윤여정. 그의 무엇이 우리(는 물론이고 외국인들까지)를 '윤며들게' 한 걸까.

 

영화 <미나리>에서 손자인 데이빗(앨런 김)이 "할머니 같지 않다"며 처음엔 피했지만 나중엔 그 누구보다 따랐던 할머니 순자라는 캐릭터에 '윤며듦'의 단서들이 들어 있다. 데이빗이 그랬던 것처럼, 이 할머니는 이역만리에서 고생하는 딸을 보기 위해 바리바리 고춧가루며 멸치까지 싸갖고 찾아가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이면서도, 가난해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는 꼴을 보여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딸에게 "바퀴달린 집에서 사니 재밌다"고 말해주는 보통의 엄마(할머니)와는 다른 인물이다.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이 윤여정에게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하시라" 했던 것처럼, 윤여정은 순자를 자신에 맞게 해석해 연기했다고 한다. 그러니 거기에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가진 세상 쿨하고, 낙천적이며, 따뜻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할머니상'이 드리워질 수 있었을 게다. 외국인들조차 'K할머니'에 매료된 건 바로 윤여정이라는 특별한 어른의 진짜 면모들이 배우라는 그의 직업을 통해 순자의 캐릭터에 '윤며들어' 가능했던 일.

 

영화가 큰 성과를 거두면서 최근 윤여정이 방송 등에서 했던 말들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tvN <온 앤 오프>에 한예리가 <미나리> 홍보를 위해 온라인으로 해외의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한 윤여정이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외신의 질문에 한 답은 그의 정중함과 자신감을 잘 드러낸 대목으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분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사람이고 한국배우예요. 제 이름은 윤여정이고요. 저는 그저 제 자신이고 싶습니다. 배우들끼리의 비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칭찬에는 감사드립니다만 제 입장에선 답하기 어렵네요." 아마도 윤여정은 애써 정중하게 그 비교를 부인했지만,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그 지칭은 그 부인 때문에 오히려 해외에서는 윤여정을 더 독보적인 배우로 기억하게 했을 게다.

 

재재가 진행하는 SBS <문명특급>에서 윤여정이 한 주옥같은 말들 중에 사치와 도전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바 있다. 그는 늘 '생계형 배우'로 살며 쉴 때 쉬고 작품을 하고 싶을 때 하게 된 게 나이 들어서라며 그걸 '사치'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하고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 (작품을) 줬었는데, 돈 못준다 그랬는데 그냥 내가 좋아서 했고, 그게 사치죠. 그건 봉사활동이라고요 제가."

 

그의 사치는 이제 돈 안 받아도(심지어 <미나리>처럼 자신이 돈을 써도)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봉사활동이 사치라는 그 말 속에는 굉장한 미사여구가 전혀 없는 윤여정다운 쿨함과 따뜻함이 섞여있다. 그래서 그가 이번에 <미나리>가 성공하면 자기한테 돈 좀 줘야 한다는 말은 전혀 밉지가 않다. 거기에는 어른의 모습이 들어있지만, 저 순자처럼 전형적인 어른(이 어른은 때론 부정적인 모습일 때도 적지 않다)의 모습을 넘어서 있다.

 

또 그는 모두가 반대한 <미나리> 출연을 강행한 것에 대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도전'을 이야기했다. 이제 나이 들어 자기가 하고픈 대로 감독에게 이것저것 요구할 수도 있는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면 "괴물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윤여정은 그래서 낯선 타향에서 자신을 전혀 모르는 스텝들 앞에 서는 도전을 선택한 것. 오롯이 연기로 인정받아야 되는 상황을 오히려 찾아갔다는 것이다.

 

이러니 어른이지만 전형적인 어른은 아닌 윤여정에게 '윤며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젊은 세대들은 전형성을 벗어난 세상 쿨한 이 새로운 어른에 '윤며들고', 나이든 세대들이 거기에 닮고 싶은 '롤모델'을 찾아낸다. 외국인들에게는 아마도 신비롭게까지 느껴지는 한국엄마의 그 따뜻함에 더해진 그들조차 고개가 끄덕여지는 독특한 K할머니에 '윤며들었을' 테고.

 

그리고 이런 강인한 생명력과 당당함, 자연스러움 같은 윤여정의 모습은 영화 <미나리>가 순자라는 할머니를 통해 그 이역만리까지 갖고 와 푸릇푸릇 피어나게 만든 '미나리'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아마도 미나리를 반찬으로 먹을 때마다 윤여정을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미 윤며들어버린 모든 이들은.(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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