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엄마가 온 몸으로 전한 위대한 모성의 진정성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이렇게 고통스런 삶이 있을까. '휴먼다큐 사랑'에 얼굴을 보인 고 최진실씨의 엄마 정옥숙씨. 힘겨운 결혼생활에 논일, 밭일, 뜨개질, 외판원, 심지어 포장마차까지 하며 살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아 스스로도 죽자 결심을 했던 그녀. 그 때 그녀의 손을 잡아준 건 어린 최진실의 손이었다. 최진실은 훗날 한 인터뷰를 통해 그 때 가장 힘들었던 건 가난이 아니라, "이러다 엄마가 떠나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었다고 술회했다.

가난이 엄습해 급식비는 못내기 일쑤에다 학비를 못내 불려 다니고, 휴학으로 돈 벌기 위해 구로공단에 간 동생은 다리를 다친 채 며칠을 굻고 빵 한쪽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렇게 사느니 죽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자식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래도 뿔뿔이 흩어져 지내다가 거미줄까지 쳐진 동네 연탄광에 모여 살면서도 그들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세 식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기자가 되어야겠다. 돈 벌어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 이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녀의 선택이 그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해 돈을 벌어 그렇게 꿈같은 나날들을 보내지만 갑자기 찾아온 불행들. 자식들만큼은 아빠 없이 살게 하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이혼만은 안 하겠다 버티며 힘겨워했던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세상이 나쁜 말들을 만들어내고 결국 사지로까지 딸을 몰아세울 때 무기력하게 울 수밖에 없는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떻고. 그 서로의 버팀목이던 수족 같은 자식들을 하나하나 먼저 떠나보내며 겪었을 엄마의 찢어지는 가슴은 뭐라 표현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엄마의 갈라진 손마디 마디가 못내 가슴이 아픈 것은 자식을 따라가고 싶지만 남은 아이들이 있어 살아내야 하고, 그래서 죽어라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세월을 그 거친 손마디가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매일을 눈물로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도, 먼저 고인이 되어버린 최진실과 최진영을 고스란히 닮은 환희와 준희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엄마는 마흔 두 번째 딸의 생일날 묘소를 찾아서도 하늘에 있을 딸 걱정뿐이다. "네 아들 딸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너한테 받은 거만큼 내가 너에게 많은 사랑을 못해줘서 마음이 아프다. 사랑한다 진실아." 그러면서 이 엄마는 그래도 "우리 딸하고 아들이 효녀 효자"라고 말한다. 자식들 없이 갔으면 자신이 저희들을 따라갈 줄 알고 자식들을 놓고 갔기 때문이란다. 또 먹고 살라고 재산을 남겨놓고 갔기 때문이란다. 거기에 대해 심지어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한다.

이 모성이 놀랍고 위대한 것은 심지어 자신 속에 가시처럼 박힌 한마저 지워내며 먼저 아이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혼으로 힘겨웠을 딸을 생각하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아이들 아빠. 그래도 그녀는 그를 받아들인다. 아이들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을 남겨주지 말고 다 잊어버리고 아빠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모성이 아니라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내 딸이 그렇게 사랑하던 두 아이를 나한테 이렇게 선물로 주고 갔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돌보고 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나는 견뎌야지 하면서도 정말 너무 딸하고 아들이 보고 싶어요. 세월이 빨리 흐르면 우리 환희, 준희도 빨리 클 것이고 나는 또 그만큼 우리 딸이 있고 아들이 있는 하늘나라로 다가가는 거니까."

아이들에게 소원을 하나씩 말하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진실이 엄마는 "하나님이 세상에 죽지 않게 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은 그 받아들이기 힘든 절망 속에서 위대한 모성이 찾아낸 한 줄기 긍정이 아닐까. '휴먼다큐 사랑-진실이 엄마' 편이 보여준 것은 절망의 끝단에서도 보살필 가족이 있어(어쩌면 그 희망과 기쁨 때문에) 삶을 살아가게 하는 모성의 위대함이다. 그리고 이 온 몸으로 전한 위대한 모성의 진정성은 연예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루머에 대해 그 어떤 것보다 강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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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자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

고 최진실씨가 간 그 길을 동생 최진영씨도 따라갔다. 우발적인 자살이라고 하지만 그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어찌 그저 갑작스레 다가온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한 방울로 물이 넘치기 전까지 이미 마음이라는 사발에는 계속 해서 물이 차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겉으로는 가까스로 웃고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바라봤던 그 마음 속에는 한없이 쏟아지는 우울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흔히들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 우울증은 사실은 감기처럼 경미한 수준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다가오지만 심지어 목숨마저 앗아가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측근의 이야기로는 고 최진영씨가 제대로 된 우울증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우울증'이나, '정신과' 같은 단어는 사실 일반인도 꺼리게 되는 것들이다. 하물며 대중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연예인들은 오죽할까.

연예인들은 특히 우울증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갖고 있다. 먼저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생활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고 혼재되는 상황이 그렇다. 사적인 공간은 개인에게 어떤 쉼터로서의 역할을 해주는데,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이것 역시 늘 외부에 드러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게다가 작금의 매체 환경은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보호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연예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쉽게 겪는다. 늘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과는 달리, 연예인들은 인기에 휘둘리는 삶을 살아간다. 극단적인 포커스를 받아온 이들은 그 카메라 세례가 사라지고 나면 마음 한 가운데 텅 빈 공허를 지독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다. 고 최진영씨가 공백기에 일이 없어 힘들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털어 놓은 것은 그 박탈감의 강도를 잘 말해준다. 또한 이런 공백기 이후에 새롭게 연예활동을 들어갔을 때 역시 그 스트레스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공백기의 힘겨움을 겪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연예인들의 노동이 육체적인 노동보다 정신적인 노동에 더 가깝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대중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킨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정체성의 혼란과 스트레스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정신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을 위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은 마치 우리가 예방주사를 맞듯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것은 연예인들의 모습이 사회적인 롤 모델이 되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정신과'라는 특정 진료과에 대한 대중들의 잘못된 인식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고 상처가 나면 외과에 가면서 마음이 아프면 왜 정신과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오래된 정신과 의사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정신과'라는 이름 자체를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을 연예인들의 자발적인 '정신건강 참여 프로그램'으로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연예인들도 마음이 아프면 당당히 찾아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거꾸로 일반인들의 정신과 문턱까지 낮출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은 현 변화해가는 사회 속에서 도드라진 존재들로서, 일반인들의 삶을 좀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란 점에서, 그들의 자살은 단지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장차 일어날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일반인들도 똑같이 겪어야할 상황으로 다가올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일반인들 역시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경계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연예인들의 자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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