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보다 크루, ‘SNL’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

tvN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 현우 편은 그 오프닝을 현우가 아닌 안영미가 열었다. 안영미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인 강경화를 패러디해 외모부 장관 안경화로 등장했다. 백색 단발머리에 트렁크를 끌고 들어오는 모습을 그대로 재연했고 말투도 “- 하되 ~ 하도록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특유의 어법을 써,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SNL(사진출처:tvN)'

안영미가 강경화 패러디를 하게 된 건 팬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안영미가 강경화를 패러디했으면 좋겠다는 누리꾼들의 반응들이 나오자, [SNL 코리아]의 ‘미운우리프로듀스101’ 코너에도 ‘강시’라는 영어 잘하는 아이돌로 출연하게 된 것. ‘미운우리프로듀스101’은 이제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만큼 거기에 맞게 새로운 캐릭터들로 진용을 꾸렸다. 조국을 패러디한 고국, 장하성을 패러디한 장함성, 강경화를 패러디한 강시 등이 출연해 새로운 정국운영을 뽑혀진 아이돌의 가수활동으로 패러디한 것.

[SNL 코리아]는 최근 들어 호스트보다 크루들이 더 시선을 잡아끄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호스트들의 역할이 예전만큼 프로그램 전체를 장악하는 느낌이 덜해졌고, 대신 [SNL 코리아]의 고정코너들, 이를테면 ‘엄카운트다운’이나 ‘미운우리프로듀스101’ 같은 크루들이 매회 꾸미고 있는 코너들이 더 관객과 시청자들의 화제가 되었다. 

이번 회에서도 역시 압권은 ‘엄카운트다운’과 ‘미운우리프로듀스101’에 등장한 이세영이 패러디한 MB리였다. 최근 다시 전면적인 재검토 지시가 내려지며 관심을 모으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한 풍자가 담겼다. 녹조라떼가 되어버린 강물을 퍼서 마시다 뱉어버리는 MB리의 모습이나, 문재수가 데뷔곡으로 내놓은 ‘사대강’의 가사를 부르며 특히 ‘보’가 많이 들어간 라임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SNL 코리아]의 살아난 시사풍자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SNL 코리아]의 고전적인 코너들이라고 할 수 있는 ‘3분 남사친’ 같은 가벼운 코너들이 있고 이런 코너들은 대부분 호스트의 매력을 백 분 활용하는 것이지만, 이제 그 무게감은 시사풍자가 담긴 코너들로 옮겨가고 있다. 호스트보다 크루가 더 빛나게 된 건 시사풍자 소재들 속으로 들어온 넘쳐나는 패러디 캐릭터들 덕분이다. [SNL 코리아]는 대통령을 포함한 화제가 되고 있는 국내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김정은, 트럼프, 아베, 시진핑 등등 해외의 인사들까지 모두 패러디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실 이런 정치 소재의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풍자들을 호스트들에 따라서는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을 게다. 그래서 그 부담을 온전히 크루 쪽으로 지우게 하다 보니 호스트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면도 분명히 있다. 게다가 최근 호스트로 출연한 인물들, 이를테면 정혜성, 김예원, 현우 등은 물론 연기자로서 지금 주목받는 이들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리 기대를 자아내게 하는 인물들은 아니다. 

이것은 [SNL 코리아]가 이제 크루들이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이 실질적인 이 프로그램의 힘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진 건 역시 자유로워진 시사풍자의 분위기다. 시사풍자의 문이 열리자 넘쳐나는 패러디 캐릭터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연기해내면서 크루들에 대한 집중도 높아지고 있다. 시사와 야한 농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내는 것으로 독특한 색을 만들어냈던 [SNL 코리아]. 그 본래의 맛이 되살려지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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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드라마에는 꼭 있다, 판타지남

구준표(이민호)는 엄청난 대부호의 아들로 뭐든 못할 게 없는 인물. 그런 남자가 한 여자, 잔디(구혜선)만을 사랑한다. 이것이 '꽃보다 남자'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판타지의 핵심이다.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 역시 퀸즈푸드라는 대기업의 사장으로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남자. 그런 그가 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천지애(김남주)를 좋아한다. '시티홀'의 조국(차승원)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능력 있는 정치인. 하지만 그는 시골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에게 빠져 '안하던 짓', 사랑을 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의 박준세(배수빈)는 능력에 성품까지 겸비한 남자. 그는 어느 날 만나게 된 집도 절도 없는 고은성(한효주)을 사랑하게 된다.

구준표에서 태봉씨, 조국, 박준세까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잘 생겼고, 둘째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셋째 보잘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넷째는 현실적으로는 발견하기 힘든 판타지 속의 완벽한 남자들이다.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이들이 등장한 드라마가 모두 성공작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판타지남들이 있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남자가 어디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들이 하는 역할은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여성 주인공을 만남으로 해서 신데렐라 혹은 캔디적인 판타지의 바탕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판타지는 과거처럼 왕자님이 그녀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현대적인 신데렐라 혹은 캔디의 이야기는 그 왕자님이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그녀가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돕는 것이다. 즉 외모나 성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이 전제되는 판타지로 그 이야기는 바뀌고 있다.

태봉씨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천지애 모르게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그녀가 처한 위기를 돌봐주고, 조국은 이제 막 정치의 세계 속에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신미래를 걱정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법을 들려준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고은성을 위해서 박준세는 헌신적이라 할 만큼 그녀를 도와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조차 바라지 않는다. 티 나지 않는 도움이기에, 그녀들은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이 남자들은 키다리 아저씨를 닮았다.

이 이른바 뜨는 드라마 속에 꼭 존재하는 판타지남들의 공통점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대 여성들의 로맨스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만큼 커진 성공 욕구일 것이다. 이제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남자는 그저 잘생기기만 해서도 안되고, 그저 부자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남자들이 그 모든 걸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그녀들을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성공의 길로 이끄는 판타지남들이 완성되게 된다.

이들 판타지남들에 대한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은 이것이 판타지라는 점에서 정반대되는 현실을 말해준다. 불황의 여파로 사회는 더 각박해졌고, 기득권이라고 하는 남성들조차 버텨내기 힘든 경쟁시대로 돌입했다. 그러니 여성들은 오죽할까. 점점 완벽해져가는 판타지남들과 그들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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