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게 복수여".. '변산' 이준익 감독이 던진 메시지

이준익 감독의 신작 영화 <변산>은 ‘청춘 3부작’으로 불린다. 최근 이준익 감독이 만든 <동주>, <박열>에 이은 청춘의 초상을 담은 작품이란 의미에서다. 실로 <변산>에서 ‘심뻑’으로 불리는 래퍼 학수(박정민)의 낮게 읊조리다 점점 고조되고 나중에는 폭발하는 랩을 듣다보면 그 청춘의 단상이 녹아난 가사에 ‘마음으로부터 뻑이 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저 자신의 일상을 일기를 쓰듯 꾹꾹 눌러써서 만들어낸 가사지만, 그 안에는 이들이 겪는 상처와 그럼에도 넘어지기보다는 한바탕 욕이라도 해대는 그 마음의 절절함 같은 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을 두고 ‘청춘 3부작’이라고 지칭하는 말에 이의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변산>은 이준익 감독 영화 중 또 다른 특징으로 보이는 ‘음악’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음악 연작’이라 불러도 좋을 법하다. <라디오스타>가 노브레인 이성우를 출연시켜 인디 록 장르를 껴안았고, <즐거운 인생>이 락밴드 활화산으로 다시금 밴드 활동을 하는 아저씨들을 통해 밴드 음악을 담으려 했다면, <님은 먼곳에>는 베트남 전쟁에 남편을 찾아 떠난 순이가 위문공연단의 보컬이 되어 노래하는 장면을 통해 신중현의 이 명곡을 담았다. <변산>은 청춘의 이야기를 힙합 랩 가사에 담고 있다. 

한때 주먹으로 유명했고 도박에 빠져 인생을 탕진해버린 아버지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학수가 변산인 고향을 등지고 자신은 ‘서울사람’이라고 고집하며 살아가는 데는 그런 아픈 과거사가 있다. 하지만 <쇼미더머니>에 6년 간이나 지원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신 학수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전화 한 통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고향은 여전히 떠나고만 싶은 지긋지긋한 곳이지만 고교시절부터 그를 짝사랑해왔던 선미(김고은)와, 그가 좋아했던 미경(신현빈) 그리고 어렸을 때는 자신이 그토록 괴롭혔지만 지금은 잘나가는 조폭이 된 용대(고준)를 만나면서 그는 과거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고향 마을이 주는 느낌은 그가 고교시절 끄적여 두었던 ‘폐항’이라는 시의 두 줄 싯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흑역사로 지워버리고픈 고향은 그래서 어쩌면 청춘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닮아있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허세를 스웨그 삼아 살아가는 청춘들. 

그런데 영화는 그 청춘들과 폐항으로 치부되는 고향을 다독여준다.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무덤가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던 학수를 어느 날 귀갓길에 보게 된 선미는 그에게 빠져들고 노을에 빠져든다. 그래서 ‘노을마니아’가 되었고 그건 선미에게 또 다른 삶의 희망이 되어준다. 

처음 고향에 내려왔던 학수가 본 친구들은 그리 멋지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과 잘 어우러지지 않던 학수는 점점 그들과 가까워지고 힙합을 하고 있어 쓰지 않으려던 사투리를 조금씩 쓰기 시작한다. 영화는 처음 서울에서 만났던 촌스러워 보였던 고향 친구들이 차츰 저마다 정이 넘치는 인물들이라는 걸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그 친구들 대부분이 그 어떤 청춘들보다 빛나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된다. 하다못해 조폭이 된 친구마저.

“값나가게 살진 못해도 후지게 살지는 말어.” 아마도 선미가 하는 이 말이 힘겨운 청춘들에게 또래 친구들이 던지는 메시지라면, 아버지가 학수에게 하는 “잘 사는 게 복수여”라는 말은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때론 너무나 화가 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삶을 선택하기도 하는 청춘들에게 진짜 복수는 ‘잘 사는 것’이라 말해주는 것. 

무엇보다 이토록 진짜 래퍼처럼 랩을 하기 위해 노력했을 배우 박정민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변산>은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그의 랩을 듣다보면 웃다가 울다가 뭉클해지게 된다. 또 구성진 사투리로 따뜻함을 선사하며 때론 빵빵 터트리는 김고은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준익 감독의 색깔이 늘 그렇듯이, 영화관을 나올 때면 뜨거워진 가슴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다.(사진:영화'변산')

728x90

호화로운 집, 고급 세단, 화려한 파티, 명품백과 우아한 드레스, 게다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망가의 변호사로 잘 나가는 남편. 돈 걱정 없는 삶... 누구든 이런 삶을 꿈꾸지 않는 이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전설이다'의 전설희(김정은)는 이런 삶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숨기며 살 순 없다"며 이혼을 결심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진짜 삶은 무엇일까. 젊은 시절, 가난했어도 피를 끓게 했던 무대 위, 그 곳에 그녀가 꿈꾸는 진짜 삶이 있다. 기타 하나 들고 노래를 부르면 답답한 가슴의 체증을 전부 날려버릴 수 있었던 그 시간의 기억들. '밴드'에 숨겨진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 여성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버리려고까지 하는 것일까.

'밴드'라는 키워드를 두고 보면 '나는 전설이다'라는 드라마가 상기시키는 영화가 있다. 바로 2007년에 개봉되었던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다. 이 영화에서 지질한 인생을 살아가던 남자들은 '밴드'로 묶이면서 그 갑갑하고 출구 없는 일상을 음악으로 훌훌 털어버린다. 자꾸만 설 자리가 없어지는 남성들이 이 영화를 보며 열광했던 것은 매일 매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오면서 잊고 있었던 즐거운 청춘에 대한 기억과 꿈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일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그래서 놀이로 여겨지는) '밴드'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즐거움'을 찾아낸다.

직장인 밴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바로 이 '일과 놀이'를 구분하며 일을 우위에 두던 삶에서 이제 그 동등함, 혹은 나아가 그것이 역전된 삶으로의 이행을 우리가 경험하는 시대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놀지 않고 일해 성공하던 시대에서 이제 제대로 놀아야 성공하는 시대로의 이행. '일밤'에 생겼다 사라져버린 '오빠 밴드'라는 코너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들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다시 악기를 쥐고 전국의 무대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물론 그 구성원들이 탁재훈이나 유영석처럼 프로들로 짜여져 아마추어밴드라는 성격이 무색해지는 단점을 드러내면서 사라져버렸지만 그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욕망은 해마다 무슨 무슨 가요제라는 이름으로, 혹은 기념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무한도전'이 밴드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최근 밴드를 조직해 아마추어 밴드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담은 '남자의 자격'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로써 '밴드'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물론 이들 밴드 이야기에 있어서, '나는 전설이다'의 전설희라는 여성이 밴드로 복귀하는 이야기와 '즐거운 인생'에서 지질한 남성들이 밴드로 복귀하는 이야기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성들은 인생의 끝단에 몰려서 밴드라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는 반면, 전설희라는 여성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밴드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좀 더 능동적이다. 남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절망을 밴드를 통해 풀어낸다면, 여성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결혼생활이 갉아먹는 자존감을 밴드를 통해 확인하려 한다. 성별에 따른 삶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밴드를 선택하는 동기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밴드를 중심으로 보면 삶의 억압과 그 탈출구로서의 음악이라는 점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밴드에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단초는 "왜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밴드'인가"라는 질문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밴드'만이 가지는 자유, 저항정신, 마이너리티 정서 같은 감성에 대한 향수가 숨겨져 있다. 밴드하면 연관되어 떠오르는 록의 정신, 사회적인 억압이나 관습적인 틀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그 저항정신의 뜨거움,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젊음(생각의 젊음이다) 하나로 하나가 되는 사람들.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메이저들의 세상을 뒤집는 위치에 있기에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뭐 하나 거칠 것이 없는 생각의 자유. 이것들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밴드'라는 존재가 던지는 매혹이다.

이들 '밴드 콘텐츠(?)'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게 모든 걸 던지고 밴드로 회귀하는 인물들의 연령대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 경험을 통해 그 깊은 억압을 겪어본 중년들이다. 따라서 작금의 중년들이 그 청춘의 시절에 만끽했던 '밴드'의 경험(여기에는 밴드에 열광했던 기억까지 포함된다)은 이들 콘텐츠 속에서 향수가 되어 이들을 자극한다. 이 중년들은 '밴드'를 통해 이제는 희미해진 이 청춘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 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도대체 나이가 장애가 될 건 뭔가. 왜 지금 하면 안 되는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되던 시대에서 이제는 마흔의 청춘을 얘기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이 중년들이 찾는 것은 잃어버린 자신들의 문화다. 일만큼 중요해진 것이 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오히려 놀이가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 때론 그 자체가 경쟁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중년들은 자신의 삶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놀이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들을 위한 것들이기 일쑤고, 그러니 그들의 문화를 기웃거리며 그 청춘의 향기를 멀리서 맡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다반사가 아닌가.

좀 더 기획적인 자본이 투여되면서 대중문화의 시대가 도래하자 밴드 음악은 사라져버렸다. 록에 심취하고 무대에 익숙했던 중년들은 그네들의 문화 한 자락을 잃어버린 셈이다. 프로의 시대에 직장인 밴드들이 아마추어리즘을 오히려 내세우며 클럽에 등장하는 것은 이 잃어버린 문화의 복원을 꿈꾸는 것이면서, 또한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사라져버린 그 아마추어리즘의 도전과 실험정신을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전설이다'라는 드라마 속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동시에, 아이돌로 대변되는 상업화된 현재의 음악계가 등장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니 그들이 돌아간 무대는 단지 향수어린 추억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밴드'라는 존재가 그려내듯이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과거 그 때'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떤 삶을 누려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들어있다.

'밴드'를 다룬 콘텐츠들 어떤 것들이 있나
윤도현이 출연했던 '정글스토리'는 당대 록월드라는 실제 라이브 록카페를 공간으로 사라져가는 밴드 음악의 끝단을 잡아냈다. 새벽 영업이 금지되던 시절, 홍대 앞 록월드는 툭하면 영업정지를 먹곤 했는데, 영화 속에 그 주인이 등장해 "영업정지를 먹었습니다"하고 말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영화로 끌어들이길 즐겨하는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 간 가수의 삶을 그려내고는, '즐거운 인생'으로 직장인밴드를 통해 당대 고개 숙인 남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의 음악 취향(?)은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에까지 이어져 월남으로 가는 순이(수애)에게 마이크를 쥐게 했다. TV는 주로 예능 프로그램이 밴드를 다뤄왔는데, '오빠밴드'처럼 아예 밴드를 특화해 하나의 코너로 만든 것도 있고, '무한도전'이나 '남자의 자격'처럼 하나의 아이템으로 밴드를 활용한 것도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가 밴드를 소재로 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전설이다'가 대표적이고 주말극으로서 '글로리아'도 역시 밤무대 가수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이들 드라마들이 무대 위에 여성들을 올린 것은 다분히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탈피와 동시에 개인적 성장의 공간으로서 무대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

728x90

‘사랑’,  ‘마이 파더’, ‘두 얼굴의...’, ‘즐거운 인생’

물 드는 건 가을 나무들만이 아니다. 가을을 타고 온 영화들이 선보이는 사랑의 다채로운 색깔 역시 극장을 물들이고 있다. ‘디워’와 ‘화려한 휴가’로 대변되는 여름방학 영화 시즌이 사회적 논쟁으로 물들었다면, 추석과 함께 시작되는 가을 영화 시즌은 ‘사랑’으로 물들고 있다.

남자의 사랑, 곽경택 감독의 ‘사랑’
“지랄 같네. 사람 인연.” 낮게 읊조리는 채인호(주진모)의 이 대사는 이 영화가 가진 결을 모두 내포한다. 먼저 거친 대사에 걸맞게 이 영화는 남자의 사랑을 다룬다. 멋지고 쿨한 남성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여성들의 환타지가 있다면, 가녀린 여성을 끝까지 지켜주는 마초적인 남성들의 환타지도 있다. 여성들의 환타지가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 요즘, 남성들의 환타지는 과연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멜로는 여성의 전유물이란 공식을 깨고 남성들의 멜로가 새로운 코드가 될 수 있을까. 여러 모로 귀추가 주목되는 작품이다.

곽경택 감독의 전작들과 유사한 굵직한 남성성의 맥락을 갖고 있는 이 영화는 ‘친구’의 연장선상에서 읽히며 남성들의 사랑에 꼭 등장하는 ‘사람 인연’의 문제를 끼워 넣는다. 즉 성공이라는 축과 사랑이라는 축이 부딪치는 그 지점에 영화적 긴장감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확대해서 보면 남자들의 삶이란 결국 이 두 축의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어떤 것이다. ‘친구’에서 그것이 성공이란 측면으로 달려갔다면, ‘사랑’에선 사랑으로 달려간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 어느 쪽의 길도 해피엔딩은 없었다. 그것이 감독의 세계관인지 아니면 남자들 삶 자체가 비극적인 것인지는 전적으로 관객들이 판단할 몫이다.

깊이 있는 사랑, ‘마이 파더’
‘마이 파더’를 가지고 제목에서 연상해 아버지 영화일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이 영화는 ‘파더’, 즉 아버지가 아닌 ‘마이’라는 주인공의 관점에 맞춰지는 영화다. 그것도 굳이 ‘파더’가 아닌 ‘마이 파더’라는 ‘나의’ 아버지라는 관점이 중요하다. 실제 잘 알려진 인물인 제임스 파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버지 황남철(김영철)과 제임스 파커(다니엘 헤니)는 그저 평범하게 부자관계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이것은 제임스 파커가 가진 자신을 버린 모국에 대한 이야기고, 그 모국과 동일시되는 아버지 황남철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가 전하는 사랑의 해답은 입양된 이들이 모국을 찾아 부모를 찾을 때 흔히 하는 말속에 숨겨져 있다. “어머니, 아버지 안 미워해요.” 제임스 파커가 가진 부모에 대한 이 입장은 황남철과 그가 단순한 부자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측면에서 모국에 대한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가족관계를 넘어서는 사랑은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된다. ‘마이 파더’는 사실 세상의 모든 모래 같은 관계들에 던지는 제임스 파커란 실제인물의 인간에 대한 끈끈한 사랑을 전하는 영화다. 두 말할 것 없는 김영철이란 배우의 존재감과 더불어 다니엘 헤니의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다.

성장하는 사랑, ‘두 얼굴의 여친’
‘두 얼굴의 여친’은 마치 ‘엽기적인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하지만 그처럼 가볍지만은 않은 영화다. 영화는 두 얼굴을 가진 여친, 아니(정려원)의 엽기발랄로 상큼한 코미디 영화처럼 시작한다. 초반부 만화 같은 연출과 제목에서 풍겨지듯 좀체 무거워질 필요가 없을 듯 여겨지던 영화는 그러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제목처럼 두 얼굴로 변신한다. 초반부 ‘여친’과의 애정모드로 시작한 이 영화는 점점 ‘두 얼굴’이 갖는 정체성의 문제로 빠져든다.

‘여친’을 사랑하는 구창(봉태규)은 그녀의 두 정체성을 모두 받아들이는 사랑의 성장을 겪게 되지만 영화는 거기서 발랄하게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반전으로 좀 무거운 질문들을 하게 만든다. 청춘의 발랄한 사랑과 고민스런 성장을 그려내며 후반부에서 완벽하게 변신하는 이 영화는 코미디에서 시작해 좀 무겁다 싶은 멜로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숨겨진 톡톡 튀는 대사와 아이디어들은 영화의 설정 자체가 갖는 약점들을 극복하고도 남게 만든다. 시종일관 웃다가 허전한 퇴장이 아닌, 어딘지 찡한 구석을 만드는 사랑 영화를 찾는다면 권할 만한 영화다.

인생에 대한 사랑, ‘즐거운 인생’
“인생 뭐 복잡할 거 있나. 즐겁게 살면 되는 거지.” ‘즐거운 인생’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세상에 던지는 신나는 모반이다. 늙다리가 되어가면서 참 인생 별거 없다고 생각할 즈음, “아닙니다. 당신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당신은 지금 충분히 즐거운 인생을 살 자격이 있습니다.”하고 말해주는 그런 영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현실에 치이면서, 정작 사랑하지 않았던 자기 인생을 보듬어주는 그런 영화가 ‘즐거운 인생’이다.

무거운 현실의 이야기를 비틀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이준익 감독 특유의 유머와 인생 패배자들 역할을 더도 덜도 아닌 무게감으로 연기해내는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의 연기력, 게다가 그 쟁쟁한 연기자들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장근석의 존재감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즐거움을 준다. 지금이라도 내 삶이 어딘가 엇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번쯤 현실을 내려놓고 푹 빠져서 보길 권한다. 어쩌면 웃다 울다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기회를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추석 시즌에 맞춰진 사랑을 담은 영화들은 포스터가 담아내는 것처럼 사람들을 다룬다. 그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들 영화들이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느 것이든 자신을 반추하게 만드는 이들 사랑을 담은 영화들은, 흘러가는 삶의 한 지점을 갈무리하는 이 시기에 다채로운 결로 우리의 감성을 건드려 줄 것이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