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대중문화로 주목받는 촬영지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가 주목받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올해 휴가철을 맞아 가장 주목받는 곳은 어딜까. 최근 이른바 뜨고 있는 작품들을 염두에 둘 때, 떠오르는 두 지역이 있다. 그것은 현재 시청률 40%에 육박하고 있는 '선덕여왕'의 경주와, 역시 1천만 관객을 예고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해운대'의 부산이다.

물론 '선덕여왕'의 촬영지는 경주만이 아니다. 용인의 MBC세트장에서도 촬영을 하고, 양평에서도 야외 촬영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경주가 '선덕여왕' 촬영지로 주목받는 것은 그 곳 보문단지 내에 조성된 신라밀레니엄파크 내에 있는 세트장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껏 사극이 조명하지 않았던 신라를 온전히 품고 있는 곳으로서의 경주가, '선덕여왕'으로 주목받는 여행지가 되는 이유다.

따라서 드라마 '선덕여왕'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세트장에서만이 아니다. 선덕여왕 하면 우선 떠오르는 첨성대가 그렇고, 지금까지는 조금은 쓸쓸하게 존재해온 선덕여왕릉이 그렇다. 그 곳에 가면 드라마가 왜 그다지도 천문에 관심을 두는가를 직접 느껴볼 수 있다. 드라마의 이야기지만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이 천문을 두고 벌이는 대결구도는 실제로 선덕여왕이 얼마나 여기에 관심이 많았는가를 거꾸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첨성대가 있는 대릉원 주변에는 실제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가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 조성된 지천으로 피어난 연꽃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그 앞에 서면 카메라를 꺼내고픈 욕망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드라마 포스터에 선덕여왕이 쓰고 있는 금관과 금귀고리를 보려면 대릉원 맞은편에 있는 천마총에 가보면 된다. 천마총도 천마총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에 조성된 소나무 군락이 장관이다.

경주가 '선덕여왕'으로 들썩이고 있다면, 부산은 영화 '해운대'로 들썩인다. 1천만 관객을 앞두고 있는 '해운대'는 그 제목 자체가 해운대이기 때문에 이 공간이 갖는 특별함은 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해운대 해수욕장에는 영화 '해운대'의 포스터가 즐비하게 걸려 있어, 영화 속 장면과 실제 장면의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해운대를 통째로 잡아먹는 쓰나미를 잡아낸 영화는, 해운대를 인파의 쓰나미로 법석대게 만든다.

해운대라는 공간이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앞으로는 바다가 있고 뒤로는 호텔과 빌딩들이 서 있는 그 공간적 특수성에 비롯된 바, 해운대의 묘미는 바닷바람 맞으며 호텔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쇼를 감상하는 것이다. 누리마루에서 보는 멋진 풍광은 영화 해운대에서 엄정화가 다가오는 쓰나미 앞에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 장면을 이야기하게 만든다. 영화 '해운대'가 보여준 부산만의 지역적인 재미, 특유의 활력은 해운대라는 공간에 서면 현실로서 보여진다.

문화 컨텐츠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익히 알려진 바다. '주몽'의 성공이 그 테마파크가 있는 전라도 나주를 일으켜 세웠듯이 '선덕여왕'은 경주를 재발견하게 만들고 있고,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 한 편이 강원도 영월을 우리에게 새롭게 보이게 했듯이, '해운대'는 부산을 우리 앞에 새로 꺼내놓고 있다. 휴가철, 이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단순한 여행지, 그 이상의 문화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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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지 관광, 노동마저 상품화되는 세상

인디언들은 사진에 찍히면 영혼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비합리적이라 생각될 수 있는 이 말은 그러나 지금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경상북도가 관광상품화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워낭소리’의 촬영지는 그 다큐멘터리 영화가 보여주었던 노동을 증발시키고, 전시되는 상품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노동마저 상품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워낭소리’가 대중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은 그 영화가 주목했던 이제는 실종되어버린 진정한 노동의 발견 때문이었다. 소를 부려 짓는 농사를 고집하는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와 함께 묵묵히 일생을 살아온 소는 그 노동을 증명해온 끊이지 않는 워낭소리만을 여운처럼 남긴 채 사라져 갔다. 그 워낭소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실종된 노동 속에서 소처럼 일하다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며 대중들의 가슴 속에도 울려 퍼졌다.

하지만 ‘워낭소리’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며 신드롬이 되는 순간(어쩌면 카메라에 담겨 그 사적영역이 공적영역으로 노출되는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 카메라가 포착한 공간의 아우라는 휘발되어 버렸다. 그 곳은 영화가 보여주었던 노동의 현장이기를 거부하고, 도시인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시대의 카메라는 저 인디언들이 터부시하며 말했던 것처럼, 확실히 그 대상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마법(?)을 발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워낭소리’의 사례는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한 산골소녀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순간, 그 상업적 물결에 휩싸여 고통받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맨발의 기봉이’의 실제 인물인 기봉씨는 영화화된 후, 유명세로 고통받다가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를 떠났고 그렇게 한참을 돌아서 이제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다. 카메라가 포착한 시골의 그 순수함들은, 바로 그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부터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이것은 현재 TV 속에서도 진행되는 현상이다. 시골이 가진 그 순박한 모습은 이제 도시인들의 향수의 공간이 되었고, TV는 이제 그 공간들을 안방으로 날라다 주고 있다. 흔히 여행 버라이어티 속에 잡혀진 시골들에서 그 본질적인 모습들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 속에서 시골 노동의 현장은 그저 병풍처럼 배경이 되거나, 도시인들의 놀이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카메라가 도시에서 떠난 자들의 하룻밤을 포착하는 그 버라이어티쇼의 공간들은 그 순간부터 도시의 논리에 복속되기 시작한다.

촬영지의 상품화는 이제 문명화의 끝단에 서서 그 골동품적 취향으로 변질되어 도시화 되어가는 현 시골의 상황을 보여준다. 도시화되어야 살아갈 수 있는 현재의 불균형한 경제조건 속에서 ‘워낭소리’ 촬영지의 관광상품화에 대해 동의해준 최 할아버지 가족들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그 마지막처럼 보이는 공간을 포착해 대중들의 마음을 울려준 그 영화가 거꾸로 그 공간을 잡아먹는 상황이 달갑게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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