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고생 버라이어티, ‘1박2일’, ‘남자의 자격’, ‘천하무적 야구단’

“버라이어티 정신!” ‘1박2일’이 틈만 나면 외치는 이 구호가 의미하는 건 뭘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생고생을 하더라도 다양한 웃음을 줄 수 있으면 결행한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물을 보면 입수한다” 같은 강호동이 이른바 ‘예능의 정석(?)’이라고 주장한 것이 바로 그 버라이어티 정신에 해당한다. 그런데 ‘1박2일’의 성공에 자극받은 것일까. 최근 들어 KBS 주말 예능의 ‘버라이어티 정신’이 눈에 띈다. ‘1박2일’은 물론이고, ‘천하무적 야구단’, ‘남자의 자격’이 그 생고생 버라이어티의 진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다.

시작부터 야생 버라이어티를 주창한 ‘1박2일’은 생고생 버라이어티의 전형이 되었다. 한겨울에 야외에서 노숙을 일삼고,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고 입수하며, 한 여름에 잠바를 껴입고 촬영하고, 늘상 밥을 챙겨주지 않는 야생의 법칙 속에서 굶주림과 독기가 얼굴에서 피어날 때, ‘1박2일’은 그 헝그리 정신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었다. 자주 굶다보니 이제는 라면 한 그릇이 오히려 고마운 지경에 이른 이들은 ‘고통의 달인’ 김C가 표상하는 것처럼 이제는 그 고통을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1박2일’의 이 야생 정신이 대단하다 여겨지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버라이어티쇼의 정점에 오른 지금에도 여전히 이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멤버들의 자세에서 읽어낼 수 있다. 야생 정신이 강조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말 그대로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웃음과 감동을 전해주겠다는 의지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리얼을 강조함으로써 지금껏 예능 프로그램이 스포츠를 다루던 것과는 확연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훈련 과정과 리얼한 경기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헝그리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김하늘과 마르코가 벌로 타이어를 매고 달리고 화생방 가스실에 들어가는 장면이나, 경기도중 김하늘이 실제로 부상을 입을 정도로 열심히 뛰는 모습은 그 버라이어티 정신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실제 야구선수들에게 코치를 받으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그 훈련이 가진 리얼함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무늬만 야구단’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야구를 세워두고 엉뚱한 짓으로 웃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야구 그 자체가 가진 재미를 프로그램의 중심에 세워두고 있다. 계속되는 실전 경기들의 연속은 야구의 묘미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김C 같은 입담꾼을 해설자로 붙여 예능으로서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프로그램에 임하는 출연진들의 살아있는 눈빛이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한편 ‘남자의 자격’은 이제는 나이 들어 몸이 따라주지 않는 아저씨 출연진들의 도전이 버라이어티 정신을 보여준다. 초창기 24시간 동안 했던 금연캠프에서 실제로 출연진들은 금단현상 앞에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노출시켰고, 이윤석은 룰을 어긴 이유로 한겨울에 개울물에 입수하는 ‘예능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2PM의 춤을 배우는 모습은 그것이 춤인지 재활치료인지 알 수 없는 영상을 만들어냄으로서 큰 웃음을 주었다. 여행시즌을 맞아 석모도로 향하는 7인용 자전거 여행은 또다른 생고생 버라이어티의 전조를 예감케 하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대세가 되어버린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그 초창기의 리얼 정신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적당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설정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건, 그만큼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의 설정이 주는 자극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리얼이 조금은 밋밋해도 여운이 오래가는 이유는 뭘까. KBS 주말 예능의 야생을 승부수로 띄우는 모습은 그만큼 의미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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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과 길, 골방에도 볕들 날은 있다

왜 하필 안방도 아니고 사랑방도 아닌 골방일까. 하지만 무언가 주류라든가 1인자라는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은 이하늘과 길에게 골방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화의 밤, ‘놀러와’의 골방에서 그들은 외모와는 걸맞지 않게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차려입고 나와 얼토당토않은 상황극을 선보인다.

이들의 조화는 실로 절묘하다. 먼저 외모적으로 보면 길은 ‘수호지’에나 나올 것 같은 장대한 몸을 가진 반면, 이하늘은 그야말로 대꼬챙이 같은 외소한 몸을 가졌다. 슈퍼맨 복장은 그 몸의 대비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관계를 들여다보면 이하늘이 길의 선배. DJ DOC의 악동으로서 만만찮은 성깔이 있을 것 같은 이하늘이 거꾸로 덩치 큰 길을 압도할 것만 같다.

이 외모와 관계의 부조화는 골방 브라더스가 갖는 웃음의 기본 코드가 된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함께 서서 관계를 배반하며 힘과 외모로 압도해오는 길을 통해 웃음을 주거나, 거꾸로 힘과 외모를 배반하며, 관계와 성깔로 압도하는 이하늘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다. 물론 같이 망가질 때는 그들은 모두 똑같은 빡빡 민 머리로 하나의 색깔을 만든다. 힙합이라는 음악이 주는 정신 또한 이들에게는 모두 귀여운 반항적인 이미지를 부가시킨다.

이러한 골방이라는 공간에서 외모와 관계의 부조화로 구축한 새로운 이미지에 힘입어 이들은 지금 타 프로그램들 속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명랑히어로’ 같은 각종 토크쇼에서 특유의 독한 이미지를 과시했던 이하늘은 이제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프로그램의 중심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빨 빠진 사자’의 캐릭터로 여전히 강한 카리스마와 그 카리스마를 무너뜨림으로써 나올 수 있는 웃음 사이를 오가며 쇼의 핵심적인 재미를 구축하고 있다.

욕설과 잦은 지각으로 벌점을 잔뜩 먹은 이하늘이 벌칙으로 최루가스실에 들어가는 장면은 실로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늘은 그 속에서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며 ‘천하무적 야구단’의 야생적인 리얼리티를 끄집어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생인 마르코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 또한 부각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 속에 자신만의 캐릭터로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냈다.

한편 길은 ‘무한도전’의 조커로 등장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무한도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고정된 캐릭터들로 인해 조금은 느슨한 면이 생겼고, 길은 바로 그 지점에서 그것을 조이기 위해 채워 넣은 캐릭터가 되었다. 실제로 길의 투입은 ‘무한도전’ 전체에 조금은 긴장감을 조성해냄으로써 프로그램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물론 그가 현재 ‘무한도전’에 서 있는 자리는 기존 멤버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종종 함께 과제를 풀어 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존 멤버들에게 과제를 제시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무한도전’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무한도전’은 모두 그 도전자의 관점에 맞춰진 형식이었지만, 길의 등장으로 인해 과제 제시자의 관점이 부가되었다. 이것은 과제 해결 과정에 있어서 길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만큼 리얼의 요소는 강화되는 것이며 이로써 길의 입지 또한 확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이하늘이나 길, 둘 다 아직까지 확고하게 예능에 자리를 잡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어느 정도는 정체되어 있는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의 가능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각자의 세계에서 강하기만 했던, 그래서 좀 더 폭넓은 지지자를 얻지 못했던 이들이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저 골방이라는 공간이 제공한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그 공간에서 서로의 강한 이미지를 상쇄시켰고, 각자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골방 브라더스라는 지칭이 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이처럼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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