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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사, 없는 것으로 정의되는 그곳이 그립다
    옛글들/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2006. 11. 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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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삶이 점점 이전투구(泥田鬪狗) 같은 모양새로 갈 때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 가슴에 응어리 같은 울화가 치솟을 때마다 마음이 찾아가는 곳이 있다. 가끔 들러 피처럼 벌겋게 타버린 욕망의 찌꺼기들을 버려 두고 오는 곳이 있다. 가지지 못한 욕망으로 가득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비워내고 그 곳에 자그마한 새로운 불씨를 심어 놓아주는 곳이 있다. 언제나 휠 것 같은 등허리를 어머님처럼, 친구처럼 툭툭 치며 웃어주는 그런 곳이 있다. 바로 산사(山寺)다.

    저무는 노을을 타고 산으로 들다
    산으로 들어가는 발길이 어찌 가벼울 수 있을까. 삶의 무게가 우리들의 어깨를 짓누를 때 드디어 이 산행을 하는 뜻은 이제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려운 도시의 무게를, 욕망의 두께를 비워내기 위함이다. 산 속의 저녁은 일찍도 찾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월정사 종무소를 찾은 시각이 5시 남짓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린다. 북적이던 사람들도 하나둘 경내를 빠져나가고, 보살님 한 분이 안내한 곳은 단기수행자들이 기거하는 곳. 말은 거창해도 그저 아무런 장식 없는 방일뿐이다. 그래도 그 곳에 든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하나씩 벽에 그려보았을 터, 짐을 부리고 선뜻 공양(저녁식사)부터 하러 나선다. 절 밥이 주는 밋밋함은 이제 산에 들어왔다는 그 느낌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헛헛한 저녁, 동동주를 찾아서
    도시를 떠나올 때, 마음은 지긋지긋한 욕망을 털어 버리고자 했으나, 그 찌꺼기는 여간해 사라지지 않는다. 글쟁이로 헛똑똑이짓이나 하며 살다보니 남은 건 빚이요, 얻은 건 글뿐이라 산사에 있는 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도시를 찾아든다. 저녁 공양을 끝낸 시각. 아직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날은 어둡고 인적은 없다. 왠지 헛헛한 저녁에 발길은 월정사 입구 저잣거리로 향한다. 한참을 내려오자 등산객들을 위한 식당이 왁자하다. 단체로 산행을 한 듯한 일단의 무리들이 식당 하나를 온전히 빌려 술판을 벌이는 중이다. 그 한 구석 차지하여 간단한 감자부침에 동동주를 마신다. 뜻하지 않은 대목에 기분 좋은 아저씨는 뭐 부족한 거 없냐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꺼내주려 한다. 술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만큼 산 공기의 청량함에 날아간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따라 술기운에, 산 기운에 젖어 절로 오른다. ?저 절로 간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이렷다!

    어둠이 소리와 빛을 살린다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와 자그마한 불빛이 어둠 속에서 무한정 커져버린다. 고개만 쳐들면 보이는 은하수. 도시의 불빛 속에서 숨죽이던 그 별들은 모두 이 산 위에 모인 모양이다. 소리와 어둠에 익은 발이 산사를 찾아드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탁소리만 있을 뿐, 경내 중앙에 있는 8각9층석탑만 불빛을 받아 묘한 자태를 드러낸다. 오대산에 1400여 년 전 신라 때부터 세워진 이 사찰은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최근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으로 유명하다. 모든 걸 덮어버리는 어둠처럼 선 스님들의 도(道)는 오히려 삶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소리와 빛을 다시 살려 놓았다.
    방으로 돌아오자 오롯이 방 하나만 객을 맞는다. 그 방은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 방에는 TV가 없고, 냉장고가 없고, 컴퓨터가 없고, 세탁기가 없고, 침대도 없고... 그렇게 없는 것 투성이인 그 방이 주는 편안함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그제야 이 산사의 어둠이, 선 스님들의 소리 없는 도량이, 이 방이 주는 비움이 무슨 뜻인 줄 알 것 같다. 적적하다 싶으면 가만히 문고리를 밀어 저 어둠 속에 빛나는 별과 대화를 나누면 그뿐이다. 불을 끄자 어둠을 타고 객은 산사와 산과 계곡과 하나가 되며 결국 꿈과 하나가 된다.

    새벽 4시 절로 눈이 떠지고

    놀라운 것은 저녁 9시면 경내에 불이 꺼지고 마치 그러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스르르 잠이 든다는 것이며, 새벽 4시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절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잤다는 행복감. 차가운 물에 덜 깬 잠을 씻어내고 새벽 예불에 참여한 후 아침공양을 하고 나도 새벽 6시가 넘지 않은 시각이다. 그러나 그 밤새 무언가 내 속에서 벌어졌던 것이 틀림없다. 좀체 잡을 수 없던 마음은 좀더 편안해졌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던 화기는 가라앉았으며, 무겁던 머리가 가벼워진 느낌이다. 빛은 산사의 어둠을 깨우듯 객의 몸을 깨웠음이 분명하다. 산사의 아침은 축축한 습기 먹은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한기가 온 몸을 엄습하지만 그것은 또한 흐리멍덩한 머리를 내려치는 불도(佛道)처럼 청명하기만 하다. 이 때가 산사여행의 백미가 되는 시간이다. 월정사의 전나무 숲으로 산책을 내려간다.

    전나무들이 해주는 말
    숲은 안개와 함께 신비로운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 위로 천천히 삭아빠진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면 부지런한 다람쥐들이 길 양옆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객다. 전나무들이 만들어주는 커다란 동굴 속으로 들어온 기분. 그 안에서는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피톤치드의 향을 고스란히 내 속으로 집어넣는 그 느낌. 몸이 깨어나는 그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벼락에 부러진 것인지 어른 서넛이 손을 맞잡아도 다 잡히지 않을 것 같은 둥치의 전나무가 모로 누워 있다. 그 풍경은 마치 수백 년을 살아온 자연이 우리네 인간에게 보여주는 메시지처럼 보인다. 나이테의 수를 하나둘 세어보며 그 많은 세월 동안 이 나무가 겪었을 풍파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깊은 침묵과 편안함을 얻은 나무의 수행을 상상해본다. 전나무들은 세월을 보내는 소회를 그렇게 말없이 웃으며 보여준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거늘. 다시 올 한 해와 또 지나갈 한 해와 그렇게 쌓여만 가는 나이테 같은 것들은 모두 자연 속에서 품어지거늘.

    절을 빠져나오며 비운 듯 채워진
    전나무 숲길의 끝에서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각. 월정사 산사의 방에 놓고 온 짐을 꾸려 서둘러 산을 내려온다. 한없이 비워내기만 한 산사의 하루. 그러나 그 비워낸 자리에 가득한 생명력은 발길을 가볍게 만든다. 오랫동안 속을 채우며 무겁게 만들었던 욕망들과 해묵은 찌꺼기들은 이제 저 삭아버린 낙엽처럼 새로 채워질 생명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도시로 들어서는 차 속에서 여전히 몸에 밴 전나무 향기를 맡는다. 그리고 그 향은 도시생활 속의 그 벅적거림 속에서 문득 문득 전나무 숲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 것이다.

    tip.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을 빠져나와 오대산, 주문진 방향인 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오일뱅크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월정사 방면으로 향하게 된다. 계속 직진하다가 강릉, 주문진 방면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도로 끝까지 가면 월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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