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앞서 파악한 SBS드라마, 제작진 신구의 조화

 

SBS 드라마가 날개를 달았다. 시청률에서도 화제성에서도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을 통틀어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사실 tvN과 JTBC 같은 비지상파 드라마들이 급성장을 보일 때 SBS 드라마는 주춤하고 위축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1년간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SBS가 드라마 트렌드의 주도권을 끌어와 화려했던 드라마왕국을 다시금 부활시켰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금토 드라마라는 새로운 블록은 SBS의 승부수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2월 <열혈사제>가 무려 22%(닐슨 코리아)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 자리의 존재감을 세웠고, <녹두꽃>이 묵직한 사극으로서 그 힘을 이어받았다. 물론 <의사요한>은 좋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금토에 어울리지 않는 무거움으로 인해 다소 힘이 빠졌지만 <배가본드>가 그 뒤를 이어받으며 화제를 이어갔다. 즉 부침이 있었지만 그 블록을 시청자들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는 것.

 

그 위에 최근 <스토브리그>와 <하이에나>는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으며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드라마가 김은숙 작가의 <더 킹 : 영원의 군주>다. 믿고 보는 스타 작가에 이민호, 김고은 같은 배우들의 캐스팅만으로도 어느 정도 그 성공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이 작품을 통해 SBS는 금토 드라마에 확고한 지분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SBS 역시 지상파들이 모두 겪고 있던 경영난에서 빗겨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를 줄이고 질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으로 편성을 꾸렸다. <닥터탐정>이 수목극에서 4%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결국 수목은 드라마 대신 예능으로 편성이 바뀌었고, 월화 시간대가 중요한 드라마의 격전지로 바뀌었다.

 

<VIP>가 이정림 PD와 차해원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15.9%라는 선전을 하며 월화극의 입지를 마련했고, <낭만닥터 김사부2>는 그 위에서 펄펄 날아 27.1%의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무도 모른다> 역시 따뜻한 감성의 스릴러라는 색다른 지점을 완성도 높게 보여주면서 10% 시청률을 넘기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SBS 드라마가 이렇게 최근 들어 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트렌드를 앞서서 읽어내고 있는 기획적인 능력과, 신구의 조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PD, 작가들의 노력 덕분이다. <하이에나>의 김루리 작가나 <스토브리그>의 이신화 작가, <VIP>의 차해원 작가, <아무도 모른다>의 김은향 작가 같은 신진 유망주들이 일련의 성공을 거뒀고, <낭만닥터 김사부2>의 강은경 작가, <녹두꽃>의 정현민 작가, <열혈사제>의 박재범 작가, <배가본드>의 장영철, 정경순 작가 같은 기성작가들이 안정적인 성공을 거뒀다.

 

최근 OTT 등을 통해 해외의 미드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달라진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배치한 것도 SBS 드라마가 트렌디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이에나>나 <스토브리그> 같은 작품은 대표적이다.

 

물론 최근 드라마의 패권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게 한때 승승장구했던 tvN 드라마의 전반적인 부진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JTBC 드라마는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일정한 완성도와 화제성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고 있는 예외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tvN 드라마는 트렌드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로코에 집중하면서 무너지더니 이번에는 너무 앞서간 포석으로 흔들리고 있다. 웹툰과의 콜라보를 통해 장르물을 가져오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너무 만화적이고 게임적으로 접근한 작품들이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SBS의 이런 선전도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언제든 바람은 바뀌고 흐름도 변화하는 것이 드라마 판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1년 간 SBS 드라마가 거둔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여겨진다. 수세를 반전시켜 이제 공세로 돌아선 것만으로도 충분히.(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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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세대를 아우른 '찬란한 유산'의 판타지가 말해주는 것

'찬란한 유산'이 그리는 세계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제 아무리 올바른 기업관을 가진 사업가라고 하더라도 제 혈육이 아닌 제 3자에게 기업을 물려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신문지상에 연일 보도되는 편법 증여의 문제는 그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찬란한 유산'의 풍경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론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한편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젊은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찬란한 유산'의 은성(한효주)은 신데렐라로 여겨질 만큼 행운아다. 그녀는 장숙자 여사(반효정)와의 특별한 인연(그것도 단 일주일의 인연)을 통해 절망의 끝에서 엄청난 희망을 부여잡은 인물이다. 물론 그녀는 그저 유산을 물려받아 호의호식하겠다는 장숙자 여사의 후세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녀가 잡은 행운은 혈연, 학연, 지연 같은 운명적 고리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로 볼 수 있다. 각종 연줄이 거미줄처럼 쳐진 현실에서 공평한 기회란 역시 한낱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찬란한 유산'은 이처럼 두 가지의 판타지를 쥐고 달려간다. 그 첫 번째는 유산만을 바라는 철없는 혈육을 내치는 장숙자 여사로 대변되는 판타지다. 아무리 못나도 자식에게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 하지만 판타지를 통해 '찬란한 유산'은 그 가려운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준다. 환이(이승기)와 그 가족들 앞에서 은성에게 진짜로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자리는 심지어 복수극의 그것처럼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두 번째 판타지는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사회에서 맘껏 뜻을 펼치는 고은성으로 대변되는 판타지다. 시험대로 제시될 2호점을 살리는 과정은 사실상 이 땅의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의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이 판타지적 존재를 심정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 것은 그 캐릭터가 가진 고운 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산, 재산만을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백성희(김미숙)와 유산 상속만을 꿈꾸는 환이네 가족과의 대비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은성은 실로 노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환이와 은성 사이의 멜로가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노력하는 모습이 먼저 그려지고, 환의 마음이 그 모습에 점점 흔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긍정의 드라마가 신구 세대를 모두 끌어안는 이유는 바로 이 두 판타지가 하나로 엮여져 있기 때문이다. 장숙자 여사와 고은성의 끈끈한 관계는 두 판타지의 고리를 보다 강력하게 연결해주고, 대중들을 그 세계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이다. '찬란한 유산'이 타 드라마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쉽게 30%의 시청률을 돌파한 것에는 그만큼 우리네 심연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이 판타지들의 힘이 강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정석적인 이야기에 충실한 '찬란한 유산'의 성공은 따라서 그 정상적인(정상적이어야 하는) 일들이 판타지로나 존재하는 현실을 거꾸로 드러내준다. 올바른 기업관이나 실력과 노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는 우리에게는 판타지에 불과한 것일까. 주말 저녁 이 찬란한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한 편으로 씁쓸함이 느껴졌다면 이것이 바로 그 정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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