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나'에서 '해품달'까지, 팩션 사극을 연 대표작가들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 방영 시작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데는 정은궐 작가라는 원작자의 작품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쓴 작가다. '성균관 스캔들'은 사극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역사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적 배경을 과거로 돌린 채, 그 안에서 지극히 현대적인 청춘멜로를 담아냄으로써 사극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청춘멜로나 사극 이 두 장르는 모두 어떤 침체기에 접어 들어있었지만, 이 두 이질적인 두 장르가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겨났다. 청춘멜로가 갖는 어딘지 지나치게 가벼운 비현실적 느낌은 사극을 만나 그 무게감을 확보하게 되었다. 사극 특유의 강한 극성은 멜로조차 그 결과로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스토리를 가능하게 했다. '성균관 스캔들'이 성균관이라는 금남의 지역에서 남장여자라는 아슬아슬한 청춘멜로를 실험했다면, '해를 품은 달'은 그 공간을 궁궐로 강화시키고, 세자와의 로맨스를 통해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극성 높은 청춘멜로를 그려냈다.

반응은 놀랍게도 단 6회 만에 마의 시청률이 되어버린 30%에 육박하는 결과를 내고 있다. 이것은 최근 사극의 시청률이 20%대 중반에 정체되어 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놀라운 결과다. 이제 겨우 도입부에 불과한 스토리에서 이 정도라면 '해를 품은 달'은 어쩌면 전성기 시절의 사극이 거둔 성과를 재연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진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팩션 작가 정은궐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틀에 갇히기 보다는 그 역사적 틀을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사극의 세계를 개척한 팩션 작가들의 그 과감한 파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성균관 스캔들'과 '해를 품은 달'의 원작자인 정은궐 작가와 함께 주목되는 팩션 작가는 이정명이다. 작년 말 화제를 불러일으킨 '뿌리 깊은 나무'의 원작자인 이정명 작가는 신윤복이 여자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그의 그림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내 화제가 되었던 '바람의 화원'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바람의 화원'은 겉으로 보기엔 여성으로 설정된 신윤복과 김홍도의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려낸 듯한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들의 풍속화가 하나의 모티브가 되고 그 풍속화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극의 실험이었다.

이정명 작가는 이 두 작품을 통해 보여지듯이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끌어오지만 그것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작가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를 소재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궁궐 내에서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루었다. 사실 세종 시대는 태평성대였기 때문에 사극처럼 극적 대립이 필요한 장르에 쉽지 않은 소재다. 하지만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역사 바깥에서의 극적 상황을 집어넣자 이 작품은 전혀 다른 긴장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원작을 드라마로 재해석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 원작을 보고 나서 비로소 세종 시대를 사극으로 다룰 수 있겠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파격적인 실험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있지만 확실히 사극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은 달라졌다. 정통사극의 시대는 왕의 시점으로 읽히는 역사를 강요받던 권위주의의 시대였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역사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푸코가 미시사를 가져와 본래 역사가 가진 권위를 해체시켰던 것처럼, 역사란 사실 권력자의 기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다른 계층의 시각으로 보면 역사는 또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셈이다.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사극의 새로운 스토리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좀 더 극대화되고 심지어 장르화된 것이 '바람의 화원', '성균관 스캔들', '뿌리 깊은 나무', 그리고 '해를 품은 달'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극의 계보다. 그 중심에 이정명, 정은궐 같은 팩션 작가가 있었다는 얘기다.

사극의 이러한(역사를 벗어나 장르화 되는) 변화는 향후 이 장르가 한류 드라마의 대표 콘텐츠가 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사실 사극이 굉장히 글로벌하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은 '대장금'을 통해 확인되었다. '대장금'은 일본, 동남아를 넘어서 중동, 유럽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냈으니까. 그만큼 사극은 우리의 모습을 가장 특징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극이 역사에 집착하게 되면 민족주의적인 틀에 갇히게 된다. 최근 사극의 변화는 이런 틀을 과감히 벗어던진다는 점에서 훨씬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사극은 이제 더 이상 역사교과서가 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콘텐츠로 즐기는 대상이 된 것. 이정명, 정은궐 같은 사극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팩션 작가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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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바’, ‘바화’ 그리고 ‘그사세’, 그 삼박자 드라마들의 세상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초기 기획단계에서는 기대작이 아니었다. ‘태왕사신기’의 끼워팔기용 땜빵드라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 물론 이재규 감독은 이 기사가 오보라고 밝혔지만 그만큼 타 작품에 비한 기대감은 적었다는 말이다. 반면 ‘베토벤 바이러스’와 경쟁하고 있는 ‘바람의 나라’는 기획단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작품이다. 고구려 사극의 원조격인 김 진 원작의 동명의 이 드라마는 해외로케와 스펙터클한 영상으로 초반부터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역시 답은 작품에 있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이라는 마니아적인 소재를 갖고도 훌륭한 캐릭터와 탄탄한 대본, 그리고 환상적인 연출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다. 마니아성과 대중성을 모두 얻은 데는 홍진아 홍자람 자매라는 작가의 역량과 ‘다모’를 연출했던 이재규 감독의 재기 넘치는 연출력, 그리고 무엇보다 김명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이 삼박자를 이룬 데서 비롯된다.

한편 뒤늦게 시작해 시청률은 아직 낮지만 특유의 완성도 높은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바람의 화원’은 조금씩 그 세찬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신윤복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의 화제를 가져온 이정명 원작의 힘이 그 바탕에 있고, 그 작품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연출해내는 장태유 감독의 장인정신이 뼈대를 세웠으며, 그 위에 문근영을 위시한 연기자들의 신들린 연기가 살을 만들었다.

월화 드라마로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이 삼박자 드라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두 말할 필요가 없는 노희경 작가의 대본과 표민수 PD의 연출, 그리고 그 위에 한바탕 신명나는 연기를 펼칠 송혜교와 현빈이라는 연기자가 그 주역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이 작품을 노희경 작가는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확보할 역작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작년 ‘인순이는 예쁘다’로 시청률은 낮았지만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여주었던 표민수 PD의 촘촘하고 섬세한 연출력은 기대감을 더 갖게 만든다.

언제부턴가 우리네 드라마 판은 자본력과 스케일, 화제성 같은 것이 작품성 그 하나보다 더 중요해진 세상이 되었다. 압축적으로 영상미학을 보여주는 드라마보다는 50부, 100부작이라는 대작의 간판이 더 앞에 걸려지고, 해외 로케이션이나 사회적인 논란거리를 담은 소재 같은 것들이 작품 그 자체보다 우선되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결국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라는 이 삼박자 위에서 춤추지 않으면 거추장스러운 화제성의 옷만 걸쳐 입은 추한 춤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 삼박자 드라마가 부디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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