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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칼레의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09. 12. 1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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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안의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백년전쟁에서 프랑스 칼레를 점령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한 칼레 시민들을 몰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측근들의 만류와 칼레시의 탄원으로 한 발 물러선 에드워드 3세는 실로 잔인한 조건을 내건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 시민들 중 처형될 6명을 뽑아오라고 한 것이다. 칼레 시민들이 고민에 빠졌을 때, 나선 인물이 당시 최대의 거부였던 생 피에르였다. 그는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했고, 이어 칼레시의 부호, 귀족, 법률가 등이 손을 들었다. 결국 생 피에르의 자결과 칼레시 부호와 귀족들이 보여준 희생정신에 감복한 에드워드 3세는 사형을 포기하고 관용을 베풀었고, 이 이야기는 '고귀한 자일수록 먼저 책임을 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원형이 되었다.

    현대자동차 최연소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이계안 전 국회의원이 펴낸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는 바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담론들을 담고 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지금 칼레의 시민들이 처한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그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네 가지 개미지옥을 통해 보여진다. 그것은 10대의 사교육, 20대의 청년실업, 30-40대의 내 집 마련, 그리고 50-60대 정년퇴직 후 겪게 되는 노후문제가 그 4대 개미지옥이다. 이계안 전 의원이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4대 개미지옥이 가진 시스템적인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칼레의 시민들처럼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흔히 의원 출신 저자들이 쓰곤 하는 자서전류나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홍보용 서적과는 결을 달리 한다. 이계안 의원이 평소 갖고 있던 소신이 들어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서울 곳곳을 다니며 현장에서 목격된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들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에 닿는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이계안 의원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낮은 눈높이는 저자가 대기업 CEO 출신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까지 자아내게 만든다. 지배층에 속하면서도 늘 시선을 아래쪽을 향해 두고 있는 저자의 생각들을 대변하듯, 이 책의 추천사에서 '88만원 세대'의 우석훈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 한국의 지배층, 그 속에서 처음으로 적정한 비용을 지불하자고 제안한 첫 번째 한국인이 바로 이계안이다.'

    결국 문제는 성장의 뒤안길에서 만들어진 초양극화와 사회분열이라는 대가를 어떻게 해야 치유할 수 있는가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선진국으로 길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물질적인 풍요에 걸맞는 문화의식, 선진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층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 자리에까지 오르는 것이 자신만의 공적이 아니라 그 사회가 부여한 것이라는 의식, 따라서 그것을 또한 사회와 약자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의식만이 지금의 문제를 넘어서게 하고, 또 앞으로 우리 사회가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칼레의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4대 지옥 속에서 아비규환의 무한경쟁 속에 살아갈 것인가. 그 선택은 바로 우리들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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