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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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에서 '프레드릭'으로

D.H.Jung 2011. 4. 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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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 '개미와 베짱이'. 개미들이 월동준비를 할 때 음악이나 연주하고 있던 베짱이가 겨울에 개미들에게 손을 벌리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개발시대의 가치를 심어놓았다.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그 때의 구호들은 근면, 자조, 협동이었다. 흙먼지 나던 마을에 시멘트 향기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개미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왔다. 베짱이는 나태함과 게으름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은 그러나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그토록 외쳐왔던 개발의 가치가 고개를 숙이고 대신 분배의 가치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급속도로 달려온 개발의 속도에 우리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시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었다. 아날로그가 갖는 물질적인 속성은 디지털이 갖는 비물질적인 속성으로 바뀌었다. 육체적 노동의 시대는 정신적 노동의 시대로 바뀌었고, 이성이 물러간 자리는 감성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저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 속에서 늘 소외받아왔던 베짱이를 다시 조명하게 되었다. 개미가 일을 할 때, 베짱이가 열심히 노래를 부른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인가. 이 시대의 감성은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에서 '프레드릭'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프레드릭'은 프레드릭이라는 이름의 작은 쥐가 주인공인 레오 리오니의 짧은 동화. 설정은 '개미와 베짱이'와 같지만, 그 이야기의 방향은 다르다. 겨울날 준비를 하기 위해 형제들이 모두 열심히 일할 때 프레드릭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형제들이 "너는 왜 일을 안하니?"하고 묻자, 프레드릭은 이상한 말을 한다. "햇볕을 모으고 있다"거나 "색채를 모으고 있다" 혹은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하는 것. 겨울이 오자 자신들의 집안에 꼭꼭 숨은 쥐들은 양식이 차츰 떨어져 갔다. 그러자 프레드릭에게 형제들이 묻는다. "네 양식은 어떻게 되었니?" 그러자 프레드릭은 눈을 감으라고 하고는 햇볕과 색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형제들은 프레드릭의 이야기에 행복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다.

'프레드릭'의 시대는 '개미와 베짱이'의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 아무 쓸모없어 보이던 (베짱이의) 즐거움이라는 가치는 '프레드릭'에 와서는 양식과 마찬가지의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다. 제 아무리 몸이 풍족하다고 해도 마음이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물론 아직도 하루 한 끼를 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지만, 세상은 가진 자들에게 오히려 이런 분들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으라 한다. '프레드릭'의 시대에 희망과 행복은 가장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되고 있다. 무엇이 무채색 삶을 행복한 색감의 삶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한 겨울에도 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레드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