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글들/생활의 단상 (18)
주간 정덕현
잘못 나온 호칭, 그 역할 바꾸기의 행복 “엄마!” 아이가 내게 엄마라고 한다. 나는 문득 아이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목소리를 여자처럼 해서 아이에게 되묻는다. “왜 그러니?” 그러자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 말했다는 걸 깨달은 아이는 씩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아니... 아빠. 이것 좀 봐줘.” 아이의 숙제를 돌봐주면서 문득 이런 경험이 유달리 우리 집에서는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아이의 말실수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직장을 다니는 아내 대신, 칼럼니스트로 집안 생활까지 도맡게 된 나는 낮 시간을 대부분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함께 생활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종종 아이에게 아내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그러면 아이는 내가 놀려주던 것을 흉내내면서 엄마 목소리로..
비오는 날 아이 우산을 펴주다 손바닥에 작은 상처가 났다. 상처는 대수롭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것을 빼고, 하루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때가 되면 밥을 챙겨먹고... 비가 오기에 간혹 창밖을 쳐다보았다. 아주 어린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콘크리트가 아닌 맨 흙바닥이었던 옛날 시골집에 살 때는 비가 오면 특유의 냄새가 났다. 시멘트에 물이 부어질 때 나던 것 같은 그 텁텁한 냄새는 잘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빗방울과 함께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콘크리트로 뒤덮여진 서울로 오면서 그 냄새는 향수가 되었다. 그래도 흙먼지 알갱이들이 만들어내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운동장이었다. 아이의 학교를 찾았다. 그 곳에서 한참을 서서 운동장으로 떨어져내리는 빗방울..
논리의 대화법, 감정의 대화법 살다보면 때론 상황이 역전되기도 한다. 10여 년 직장생활에 얻은 거라곤, 뱃살과 카드 빚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집단의 삶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아이들과 대화한 게 도대체 언제였나 생각하게 된 순간, 사표를 던지고 프리랜서의 길을 걸어온 나로서는 이 역전된 상황이 자못 황당하기까지 하다.그 때 아내가 늘 했던 말이 뭐였던가. 술 좀 작작 마시라는 것, 가족 좀 생각하라는 것, 회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런데 아내가 직장을 나가고 나서부터 그 말은 어느새 내 것이 되어 있었다. 회식 좀 작작해, 그래도 12시 전엔 들어와라, 가족이 우선이야. 아내는 예전에 내가 변명했듯이 논리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피력한다.회식 하고싶어 하는 거 아니..
난 술과 묘한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나보다. 할아버지께서 어릴 적부터(취학전이었음) 주전자에 받아 마시던 막걸리 자시고 꼭 내게 남은 걸 줄 때부터 알아봤다. 할아버지는 젊어서 술 때문에 사단이 났다고 하더만... 가끔 명절 같은 날에 선산에 친척들이 모였을 때, 서로 술을 피하는 모습에서 나는 진즉부터 알아봤다. 그 술을 피하는 친척들이 사실은 엄청난 주당들이었고 각각 몇 번씩은 집을 말아먹다 풀어먹다 했다는 것을... 그래서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는 마치 자신들을 보듯 경건했던 것을...아버지도 만만찮게 술을 자셨다. 30년이 넘게 조기축구를 나가시면서 아침 겸 반주로 시작하던 것이 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술로 사단난 일들을 아셨던 터라, 조심에 조심을 하셨고 따라서 결국은 당신 몸만 사단..
농구장에 가본 지 정말 오래됐다. 아니 경기장이란 데를 가본 게 오래된 거 같다. TV 속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거 아닐까.그러다 지난 한국시리즈 야구 티켓이 생겨서 딸내미랑 와이프 데리고 오랜만에 야구장에 갔었다. 야구는 재미없었다. 그런데 야구장은 참 재미있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 공 하나에 환호하고 야유하고... 아마도 책상머리에서 골치깨나 썩였을 양복쟁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커다란 비닐봉지에 구멍을 뚫어 입고서 춤을 췄었다. 딸이 그걸 보고 이해할 수 없어하던 표정이 기억난다."아빠 저 사람 왜 저래?" "좋아서 그러지..."차마 그 양복쟁이의 춤 속에 숨어있을 삶의 무게감 같은 걸 얘기할 수는 없었다.공은 때리면 날아가고 바닥에 닿으면 튀어 오른다. 던지는 방향으로 곧바로 흔들림도 없이..
고대 국문과 출신 후배(와이프 친구)가 프로듀싱한 영화라고 해서 이 영화를 봤었다. 그 친구하고는 옛날에 8미리 단편영화를 한편 같이 만들었었다. (물론 의욕만 많았고 중간에 카메라가 맛이 가는 바람에 중도하차했지만) 여하튼 그 때 그 녀석은 연극을 하고 있어서 소주 한 잔으로 주인공으로 캐스팅 했었다. 나는 녀석이 연극으로 밥벌어 먹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왠걸? 여러 회사들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영화 기획사 들어가서 프로듀서를 하고 있다. 늘 함 보자는 말만 하고 한번 보질 못했다. 녀석도 바쁘고 나도 바빴으니까... 이 영화에서 최민식이 뭐 이런 얘길 했던 거 같다. "나 처음부터 다시 해보고 싶어..."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최민식은 이런 다시 해보고 싶다는 투..
안산에는 백수의 왕이 산다. 예전 우리 와이프를 만나게 해줬던 시나리오 쓰던 학원에서 만난 그 선배는 당시 건축디자인회사의 부장이었다.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비롯된 그의 영화보기는 영화 속의 공간보기의 재미로 이어지다가 결국 영화판에 뛰어보겠다고 시나리오 학원에 들어왔던 것. 나이 40이 넘어서 누가 보면 대단한 용기라고 하겠지만, 선배에게는 대수로운 일이었다. 회사 때려치기를 밥먹듯 하면서 동남아 매니아였던 선배는 필리핀으로 싱가폴로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를 전전하며 살았다.(여행이 아니고) 그러다 갑자기 국내에 들어오더니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 경북 상주 오지에 안다는 민박집을 소개해줬고(그때는 집도 없었으니까) 배낭에 원고지 한 다발, 볼펜 한 박스 들고 상주 오지로 들어갔던 거디었다...
겨울이 다 왔는데도 참 푸르지... 할머니 말이 대나무는 누가 자르기 전에는 잘 안죽는단다... 폭설에 태풍에 바람잘날 없는 삼척 그 속에서 잘도 버티고 있지.한 5년 됐나. 친구 중에 한 놈이 백혈병에 걸린 적이 있다. 이 놈 피가 안 멈춰서 친구들이 모여 헌혈증 모으고 피 찾으러(드라큐라처럼) 다니고 했는데 정작 이 놈은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해서 답답해 죽겠다고 하더만. 나중에 알고보니 무균실 들어갔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서 나왔는데, 그 노마 농담삼아 하는 말이 하도 심심해 매일 저녁 아무 자리에 있는 사람이랑 떠들곤 하는데, 그러다보면 한 사람씩 자리를 비우게 된다더라. 그 중 몇몇은 사망선고받고 나오고, 이 놈같이 재수좋은 놈은 살아서 나오고... 나오더니 이 노마 유머가 아주 출중해졌다. 집이..